postypeThe Unholy Redemption루스매브룻맵🐔🐺마피아신부AU

불경한 구원: 5

Published on March 5, 2026 by acorn_field

[마피아신부AU 루스매브] 브래들리와 매버릭


The Confession


거의 십 년 만에 돌아온 집은 그가 기억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불필요한 감상에 젖어 있기에 루스터의 감정은 다소 메말라 있었고, 정보국 요원과의 만남 이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상념에 날이 선 채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는 머리끝까지 차오른 피로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대충 물기를 닦아낸 루스터의 축축한 발걸음을 따라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여전히 말끔하게 정리된 자신의 옷장에서 손에 닿는 대로 브리프와 검은색 티셔츠를 집어든 그는 블러드던과 정보부, 그에게 주어진 다음 명령과 소련 지도부의 계략 따위의 상념에 빠져있었다. 예상보다 타이트하게 그의 몸을 두른 검은 티셔츠는 그가 예상한 방부제나 먼지 냄새 대신 신부의 옷장에서 풍기던 세제 향과 비슷한 어린 시절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그제야 루스터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된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정신을 잃은 신부를 품에 안은 채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머릿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던 기시감이 조금씩 무겁게 그의 목을 조였다. 십여 년 동안 비운 방이라기에는 마치 그가 당장 어제까지도 지낸 것만 같았다. 브래들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살았다고 하기에는 장식 하나 바뀐 것이 없었고, 반짝이는 가구와 장식들은 신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신부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자신의 방을 항상 정리한 걸까? 어째서?

순간적으로 목구멍까지 차오른 감정을 삼켜낸 루스터가 익숙하기만 한 자신의 방을 구석구석 응시하기 시작하자, 잊은 줄로만 알았던 오래된 기억들이 조금씩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 성당, 봉사활동, 야구부, 좋아하던 밴드, 드럼, 전투기 장난감….

책상 위, 이따금 심심할 때면 만지곤 하던 그의 첫 번째 홈런 기념 야구공 또한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브래들리.’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올린 매버릭의 상기된 표정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문신과 상흔으로 거칠어진 그의 손안에 들어온 야구공은 여전히 그의 손에 딱 맞게 들어왔다. 우둘투둘한 실밥을 익숙한 손길로 쓰다듬으며 머릿속을 비죽 치고 드는 어린 시절의 단편들을 하나둘 생각하던 루스터는 조금 늦게 그 아래 놓여 있던 포스트잇을 알아차렸다.

— 네가 친 홈런을 친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구나.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브래들리. 힘든 일도 포기하지 않고 항상 노력하는 너를 언제나 진심으로 존경한단다.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난 언제나 널 자랑스러워할 거야. 사랑해.

루스터는 단정한 매버릭의 글씨가 빼곡하게 찬 포스트잇을 든 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새하얗게 비어버린 그의 머릿속은 그 너머에서 뜨겁게 끓어오르는 감정이  금방이라도 그를 덮칠 듯 일렁였다. 빨라지는 심박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거친 호흡을 헐떡인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책상과 그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가 읽다 만 책 사이에도, 그가 공부하던 노트 위에도, 어렸을 때부터 간직한 전투기 장난감 밑에도, 매버릭의 노트가 남아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매버릭은 날…. 자꾸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진심 어린 애정의 조각에 루스터의 뺨 위로 굵은 눈물방울들이 고일 틈도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 무서워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 없단다, 브래들리! 난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하하….”

힘없는 웃음이 눈물로 축축해진 콧수염을 밀어 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장난으로 선물을 받고 침대 옆의 협탁 뒤에 숨겨놓았던—맹세코 단 한 번도 펴보지 않은—게이 성인 잡지마저 그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설마. 문득 루스터의 머릿속으로 그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던 것들이 떠올랐다. 바닥에 거의 엎드린 채 침대 아래 숨겨놓았던 항공기 관련 잡지들과 해군 사관학교 입학 팸플릿을 꺼낸 루스터는 그 위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응시했다.

— 미안해, 브래들리. 정말 미안해. 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을거야. 미안해. 사랑해.

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겁쟁이처럼 도망치지 않고 당신의 말을 제대로 들었을 텐데.

또다시 치솟은 뜨거운 눈물이 팸플릿과 포스트잇 위로 떨어져 매버릭의 글씨를 번지게 만들었다.

“Чёрт….” (젠장….)

당황한 손길로 자신의 얼굴과 포스트잇에서 서둘러 물기를 닦아내던 루스터는 그 아래쪽으로 느껴지는 이질적인 존재감에 의아해하며 팸플릿을 들어 올렸다. 하얀 봉투에 담긴 조금은 묵직한 편지가 그 사이에서 떨어졌다.

— To Bradley.

포스트잇들과는 달리 다소 딱딱한 글자로 장식된 편지 봉투를 집어든 루스터는 침대 가장자리에 기대 앉으며 두툼한 편지를 읽어내렸다.

 

— 안녕, Baby bird. 

네가 그 별명을 싫어한다는 건 알지만, 아마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을 테니 한 번만 봐주렴. 상속 준비인의 말에 따르면, 아무런 법적인 관계가 없을지라도 내가 죽고 나서라면 내 보잘것없는 재산과 내 모든 게 담긴 이 집의 유일한 상속자인 너를 정식으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말이야. 네가 26살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집을 맡아달라 부탁한 캐롤 덕분에 이렇게나마 편지로 너를 만나겠구나. 네가 그 전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말이지—그것만큼 내가 바라는 것도 없겠지만, 내가 어떻게 감히 그걸 바라겠어. 그저 이 편지가 네게 닿을 때까지 네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를 언제나 간절히 기도할 뿐이란다.

지루한 상속 관련 문제는 아마 이미 다른 누군가 잘 말해줬을 거라 생각한다. 혹여 네가 쓸데없는 늙은 신부의 편지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면, 이대로 그저 불태워 버려도 네게 해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야. 만약 네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면…. 내 인생은 네가 있어서 행복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항상 미안하고, 고맙구나, 브래들리. 

네가 여기까지도 읽고 있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 늙은이의 소원을 마지막으로 하나 더 들어주셨다고 여기도록 하마.

나는 죄 많은 인생을 살아왔단다, 브래들리. 비단 네 아버지나 너의 사관학교 입학에 관련된 일뿐만은 아니야. 그동안 많은 죄들을 고해했고, 여전히 속죄하는 중이지. 그렇지만, 브래들리, 차마 고해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죄를, 나는 매년 짓고 있단다. 이 편지를 매년 새로 쓰고 있지만…. 글쎄, 브래들리. 아마 나는 내년에도 또 똑같은 죄를 지었다며 편지로나마 너에게 고해하겠구나. 지금처럼 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주마, 브래들리. 나는 언제부턴가 양자인 너를 불경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단다. 매년 네 아버지의 기일만 되면 나를 악몽에서 구해주는 너에게 입을 맞추고, 너의 온기를 원하는 꿈을 꾸고 있어. 네가 믿어줄지는 모르겠다만, 몇 달간이나 밤새워 기도하고 명상을 하며 준비를 해도…. 이제는 일 년에 한 번, 꿈에서밖에 만날 수 없는 널 차마 밀어낼 수가 없더구나.

네 뒤에서 너의 앞길을 막으려 한 것도, 냉전과 평화 사이에서 불안하던 와중에 해군 조종사가 된 네가 너의 아버지처럼 하늘에서 스러지지 않을까 걱정한 것도 큰 이유였지만…. 사실은 너의 아버지를 죽인 사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네가 나를 경멸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란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이기적이고 볼품없는 이유인데, 그 당시에는…. 언제나 과분하기만 한 너의 다정한 애정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아.

캐롤도 너도, 한 번도 내가 저지른 일로 나를 원망한 적이 없었지. 원망과 미움을 받아 마땅한 살인자에게, 평생 갚지 못할 사랑을 베풀어 주었고, 덕분에 나는 살아갈 힘을 얻었단다. 그리고 나는 내 분수에 맞지 않는 그 은혜로운 사랑에 감사할 줄 모르고, 끝없이 욕심을 부렸던거야. 네가 해군 조종사가 되지 않는다면, 너희 아버지를 앗아간 사고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지 못한다면…. 너는 계속 나의 곁에 남아 이런 볼품없는 나에게 애정을 주지 않을까, 이기적으로 바랐던 거지. 어린 네게서 아버지를 앗아간 내가, 주제 넘게 말이야.

이제와 감히 너의 용서를 빌기에는 지은 죄가 너무나 크구나. 지금쯤이면 주님의 심판을 받은 내 영혼은 마땅히 지옥에서 불타고 있을거란다. 네가 나와 함께하는 동안 과분하게 나누어 준 소중한 애정과 믿음을 배신한 이 역겨운 늙은이를, 평생 용서하지 말아다오. 나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구나.

나는 네가 그날 이후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연락조차 닿지 않는 게, 나의 모든 죄를 아는 아버지의 형벌이라고 믿고 있단다. 그렇다면, 브래들리, 너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생을 망친 역겨운 죄인이 사라진 채 행복하고 은혜로운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늙은이의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구나. 네 소중한 시간을 이런 편지를 읽는 데 쓰게 만들어서, 네가 가지고 있었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망치게 만들어서, 네 인생에 언제나 걸림돌이 되어서, 항상 미안하구나.

항상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은혜와 영광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언제나 내 모든걸 바쳐서 사랑한단다. 보고 싶구나.

With love, Pete Mitchell.

 

작년 오늘의 날짜가 적힌 매버릭의 편지는 중간 이후부터 떨리는 손길이 남아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다리가 풀린 루스터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편지를 읽고 있었다. 눈앞을 일렁이는 뜨거운 눈물과 덜덜 떨리는 손끝이 소중한 단어들을 자꾸만 뒤흔들어, 몇 번이고 되뇌어 읽어 내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 없이 진실된 사랑만을 나누어준 매버릭에게, 자신은 무슨 짓을 했는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죄악에 대한 회한과 죄책감이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한 루스터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악화되는 병마에 고생하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일에 가까워져서야 그들의 곁을 떠났다.

가족으로서, 사제로서, 매버릭은 그가 가진 모든 힘을 짜내어 어머니의 가는 길을 돌봤다. 이제 브래들리는 어엿한 성인이었다. 자신보다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던 매버릭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어머니의 관이 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어린애처럼 매버릭의 품에 안겨 우는 동안에도, 검은 예복에 감싸인 사제로서의 매버릭은 그 큰 눈에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 한 방울을 떨구지 않았다.

그러나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슬픔이 그의 속에서 곪은 것인지, 본래도 아버지의 기일을 전후로 몸이 좋지 않던 매버릭은 장례미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심한 열병으로 며칠을 앓아 누웠다. 기대지 않고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도, 별것 아닌 일로 자신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성당에서 지내겠다던 매버릭은, 제게 남은 이는 매버릭밖에 없다는 브래들리의 말에 결국 고집을 꺾었다. 간신히 오트밀과 크래커 두어 개를 넘기고 브래들리가 사온 약까지 군말 없이 받아먹은 매버릭은 몇번이고 미안하다 되뇌며 금세 잠에 빠졌다.

여러모로 답답한 마음에 잠이 영 오지 않아 밤 늦게까지 어머니의 짐 정리를 하던 브래들리는, 깨어있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작은 흐느낌을 들었다. 매버릭을 향한 걱정이 브래들리의 걸음을 재촉했다.

“구스….”

창백해진 그의 얼굴은 조금 열린 문틈에서 새어 들어온 불빛에 조금 드러났다. 언제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매버릭의 검은 머리칼은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 그의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언제나 아름답게 녹빛으로 빛나던 눈동자는 눈꺼풀에 가려진 채 축축하게 젖어 뭉친 채 파들거리는 속눈썹 뒤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응…. 구스…….”

“매브, 일어나요.”

괴로운 듯 흐느끼며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매버릭의 흐트러진 모습이 브래들리의 심장을 조였다. 침대에 앉아 조심스레 어깨를 주무른 브래들리는 여전히 열이 내리지 않은 그의 상태를 걱정했다. 깨워서 약을 더 먹여야 하나. 자신이 아플 때면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던 매버릭을 생각했다.

“지금 꿈꾸고 있는 거예요. 일어나요.”

여전히 악몽을 꾸는 듯 끙끙거리는 그가 쉽게 깨어나지 않자, 브래들리는 식은땀에 젖은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문득 그의 한 손에 꼭 맞게 들어오는 매버릭의 작은 얼굴이 그의 심박을 울렁였다. 매버릭이…. 이렇게 작았었나?

“음….”

작게 몸을 떨던 매버릭이 온기를 쫓아 브래들리의 손에 뺨을 비볐다.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브래들리의 아랫배에 똬리를 틀었다. 가빠지는 숨에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지나가는 감정이리라, 죄악으로 낙인찍어 잊으려 노력하던 끈적한 묵은 감정이 심연에서 기어 올랐다. 어깨를 주무르던 손길은 조심스레 그의 하얀 목덜미를 쓸었다.

“매브.”

“허억! 흡, 하아….”

“괜찮아요. 그냥 꿈이에요.”

급한 숨을 들이킨 매버릭의 눈꺼풀이 파들거렸다. 허우적거리던 손을 단단히 쥐어주자 이내 그의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의 한 손에 딱 맞게 들어오는 손가락이 가늘었다. 터질 듯 뛰는 심박에 브래들리의 숨이 거칠어졌다. 마치 살아 숨쉬는 조각상처럼 제 손안에 들어온 얼굴을 엄지손가락으로 더듬자 날숨을 뱉어내며 살풋 벌어진 매버릭의 잇새로 하얀 이빨과 달콤하게 젖은 입안에 담긴 그의 작은 혀가 드러났다. 다리 사이로 불경한 열기가 모여 그의 아랫배를 당겼다.

딱 한번만….

브래들리는 긴장된 마른 침을 삼켰다. 얼마 남지 않은 이성은 용암같이 그의 몸을 뒤덮은 배덕한 욕망에 패배한 채 머릿속 구석으로 밀려났다. 조금씩 얼굴을 가까이 할수록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의 뾰족한 콧방울이 살짝 구부러진 매버릭의 콧대에 닿았다. 깨끗한 침구의 세제향에 뒤섞인 매버릭의 체향이 비강을 가득 채우고 혀뿌리를 자극했다.

감히 그의 손에 닿지 않을 신성한 피트 신부님이, 거친 숨결이 닿게 가까웠다. 열이 올라 꿈속을 헤매는, 자신을 거절할 의식조차 없는 매버릭. 그의 심장을 조이는 죄악감에 차마 마지막 그 짧은 거리를 좁히지 못한 브래들리는 꿈만 같은 이 순간이 평생 이어지기를 기도했다.

“흐음….”

그러나 그의 절실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바닥에 날숨을 흘린 매버릭의 눈꺼풀이 조금 열리고, 어둑한 방에서도 보석같이 빛나는 녹안이 드러났다. 그의 손안에 들어온 가느다란 손가락이 약하게 꿈틀거렸다. 안 돼. 사나운 실망감이 브래들리의 목구멍을 긁었다. 금세 솟아오른 눈물이 그의 시선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Bradley…?” (브래들리…?)

“It’s just a dream, Mav.” (꿈이에요, 매브.)

잔뜩 갈라진 매버릭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혹시라도 그가 완전히 깨어날까, 조용히 속삭인 브래들리는 매버릭이 다시 잠에 빠지기를 절박하게 바랐다. 그의 손등을 살살 문지르자 매버릭은 졸음 가득한 낮은 한숨으로 목을 울렸다. 미안해요, 매브. 죄책감이 들러붙어 거칠어진 날숨이 불안하게 떨렸다.

“A dream?” (꿈?)

“Yes. Just a dream. Don’t worry.” (네. 그냥 꿈이에요. 걱정 마세요.)

부드러운 입술이 닿을 듯 가까웠다. 떨리는 손끝으로 그의 뺨을 조심스레 더듬자 매버릭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구르며 브래들리의 얼굴을 훑었다. 느릿하게 올라온 차가운 손끝이 브래들리의 상기된 뺨을 더듬었다. 매버릭의 손길에 날 선 욕망이 브래들리의 척추를 타고 올랐다. 이마가 맞닿고 콧대가 겹쳐 비벼졌다. 아직 미열이 남은 그의 이마가 축축했다.

“Mm…. Brad….” (음, 브래드….)

“Shh, it’s okay, Mav.” (쉬, 괜찮아요, 매브.)

불편한 듯 고개를 돌리려는 매버릭의 뺨을 감싼 손이 덜덜 떨렸다. 제 손에 들어온 작은 얼굴은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부서질 것만 같았다. 브래들리는 조심스레 그의 턱선을 매만지며 고개를 저에게로 다시 돌려놓았다. 하루 새 자란 까슬한 수염이 브래들리의 손끝을 간질였다. 뜨거운 숨이 뒤얽혔다.

“This is just, nothing but a dream.” (전부 다, 그냥 꿈이에요.)

애원 같은 속삭임이 브래들리의 잇새를 넘었다. 느릿하게 감기던 매버릭의 눈꺼풀이 올라가고 녹색 눈동자의 흐릿한 시선이 브래들리를 응시했다. 무어라 말하려는 듯 매버릭의 입술이 움직였다.

“Maverick.”

스치듯 닿은 온기에, 매버릭의 시선이 그의 입술로 내려갔다. 그가 뱉어낸 달콤한 날숨이 브래들리의 입술을 훑었다. 한껏 내려간 그의 속눈썹은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사랑해요. 차마 뱉어내지 못한 뜨거운 감정이 목구멍으로 솟구쳤다. 더 이상 눌러 내리지 못한 욕망은 결국 브래들리를 움직였다.

어설프기만 한 입맞춤으로 맞닿은 매버릭의 입술은, 그의 영혼을 태울 수 있을 만큼, 너무나 뜨거웠다.

 


한 순간의 욕심으로 잠든 신부님에게 손을 댄 자신의 죄악이 비틀어버린 운명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세월의 무게가 브래들리의 심장을 짓눌렀다. 아무리 쏟아내도 고통은 그만큼 다시 차올랐다. 매버릭의 진심을 제 가슴에 눌러 끌어 안은 그는,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시간을 바닥에 웅크린 채 흐느끼며 보냈다.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 몸을 추스린 브래들리는 홀린 듯 매버릭의 방을 향해 발을 옮겼다. 혹여나 그가 깨어날까 숨을 죽이며 방 문을 연 브래들리는 침대 위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 매버릭의 실루엣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다시 한번 그의 목구멍을 치고 오르는 울음은 틀어막은 잇새로 끊임없이 쏟아졌다.

“I’m sorry…. I’m so sorry….”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바닥을 기어 신부가 잠든 침대로 다가간 브래들리는 덜덜 떨리는 손을 더듬어 침구 위에 올려진 매버릭의 손을 잡았다.

“I’m sorry, Mav. It’s all my fault. I’m so sorry.” (미안해요, 매브. 다 내 잘못이야. 정말 미안해요.)

그의 부드러운 손바닥에 뺨을 비비며 울음 섞인 사죄의 말을 뱉어내던 브래들리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떨리는 손길에 시선을 올렸다.

“Brad…. Bradley…?” (브래드…. 브래들리…?)

잔뜩 쉰 갈라지는 목소리로 속삭인 매버릭의 풀린 눈동자가 느릿하게 브래들리의 얼굴을 훑었다. 미약하게나마 자신의 얼굴을 끌어당기는 손길에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간 브래들리는 여전히 잔류하는 미열에 상기된 매버릭의 아름다운 얼굴을 구석구석 소중하게 응시했다.

“Mav….” (매브….)

“Hmm…. Am I dreaming again?” (흠…. 또 꿈인가?)

자신을 부르는 브래들리의 젖은 목소리에 작게 미소를 지은 매버릭은 제 손에 들어온 브래들리의 뺨을 어루만지고는 축축한 눈물길을 조심스레 닦아냈다. 자신이 그에게 저지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다정하기만 한 매버릭의 온기에 필사적으로 억누르던 울음이 그의 목구멍을 뚫고 올라왔다.

“It was me. I did it. I’m sorry. You were asleep, but you were so…. beautiful…. I lied to you, telling you it was a dream while you were fighting a fever. I’m so sorry, Mav. I didn’t…. I didn’t mean…. I would have never done it if I had known it would hurt you like this...” (저예요. 제가 그랬어요. 미안해요. 당신이 자고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아파서 힘들어하는 당신한테는 그냥 꿈이라고 거짓말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매브. 저는…. 저는 그게…. 이렇게 당신을 아프게 할 줄 알았다면, 절대로….)

“Shh, Bradley. It’s okay.” (쉬, 브래들리. 괜찮아.)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며 두서없이 잘못을 고하던 브래들리는 축축해진 그의 콧수염을 쓰다듬는 매버릭의 손길에 입을 다물었다. 매버릭의 깊은 녹빛 시선이 브래들리의 죄 많은 영혼을 위로했다.

“There’s nothing you did wrong. Come here.”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단다. 이리 와.)

가볍게 브래들리의 이마에 입을 맞춘 매버릭은 그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팍으로 당겨 안았다. 바짝 붙은 귓가로 넘어오는 매버릭의 심박에 이리저리 날뛰던 그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Cry as much as you want, baby bird. Everything will be okay. I love you always.” (마음껏 울어도 돼, baby bird. 다 괜찮아질 거야. 나는 언제나 널 사랑한단다.)

“Mav….”

머리카락과 뺨을 쓰다듬는 손길과 다정한 속삭임은, 너무나도 과분하게 따스했다. 꾸물거리며 침대로 올라와 그의 곁에 누운 브래들리는 그의 가슴 위에 머리를 올리고 마른 몸을 바짝 끌어당겨 안았다. 그의 머리와 목덜미를 몇 번이고 느릿하게 쓰다듬어주는 다정한 온기와 안정되는 심장소리에 자꾸만 굴러내리는 눈물이 매버릭의 티셔츠를 적셨다.

사랑해요. 미안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매버릭.

진심만이 담긴 말들은 끊임없이 브래들리의 머릿속을 채우며 잇새로 빠져 나오거나 목구멍 뒤로 사라졌다. 영혼마저 위로해주는 매버릭의 온기를 느끼며, 브래들리는 너무나도 오랜만에 아이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뺨을 어루만지며 그를 깨우는 한낮의 햇살에 신부는 밤새 그를 감싸던 온기를 찾아 침대 위를 더듬었다. 그러나 차갑기만 한 옆자리에 놀라 눈을 뜬 그는 내장이 뒤집히는 복통과 온몸을 묵직하게 맴도는 근육통에 신음하며 느릿하게 일어나 앉았다. 익숙하지 않은 미약한 숙취가 그의 머릿속 한구석을 쿵쿵거렸다.

꿈이었나?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신부는 환상같이 피부 위를 맴도는 간지러운 열기에 어깨를 주물렀다. 사죄의 말을 더듬으며 자신의 품에 안겨 훌쩍이던 브래들리. 아이는 사랑한다는 다정한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꿈이라기에는 너무….

전날의 기억을 더듬던 그의 머릿속으로는 이내 사제실에서 마주한 브래들리의 위협적인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을 제압하던 강한 손길과 의식이 점멸하고 온몸이 통제를 잃을 때까지 그를 몰아붙이던 뜨거운 열기와 자극,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웠던 깊은 입맞춤의 기억이 그의 뱃속을 뒤틀었다.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올 것처럼 그의 뱃속을 가득 채우던 브래들리의 열기에 아랫배가 묵직하게 당겼다.

“아….”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격렬했던 정사와 고삐 풀린 욕정에 함락당해 브래들리의 품에 안겨 천박하게 애원하고 신음하던 기억에 그의 다리 사이로 부끄러운 열기가 모였다.

죄를 지었나이다…. 귓바퀴까지 기어오르는 수치심에 침구로 다리 사이를 눌러 내린 신부는 습관적으로 기도를 읊조리며 자신의 묵주를 찾아 협탁 위를 더듬었다. 그러나 협탁 위에는 그가 언제나 올려놓던 묵주 대신 엉성하게 잘린 사과가 담긴 그릇과 작은 포스트잇 노트가 놓여있었다.

— 오트밀도 만들어놨으니까 먹어요. 속 안 좋다고 아침 거르지 말고.

신부의 심장이 불안하게 퍼덕였다. 집에 돌아온 기억이 없었다. 더러워진 몸을 씻기 위해 샤워를 한 기억도, 깨끗한 옷을 다시 입고 잠자리에 든 기억도 없었다.

가빠진 숨을 헐떡이며 흐릿해진 시선으로 자신의 방을 둘러보던 신부는 책상 위 액자에 붙은 포스트잇을 발견하고 떨리는 다리를 침대 밖으로 옮겼다.

— 허락 없이 가져가서 죄송해요. 나중에 돌려드릴게요.

브래들리가 사라진 바로 그 해, 몇몇 성당 사람들과 같이 새해를 맞이하며 누군가 찍어주었던, 두 사람이 같이 찍힌 가장 최근의 사진이 있던 자리는 이제 텅 비어있었다.

‘내년 새해는 동부에서 맞이하는 거예요.’ 매버릭보다 한참 크게 자란 그때의 브래들리는 언제나처럼 편하게 어깨동무를 한 채, 그리 당당하게 말했었다. 브래들리가 원하던 대로 구스의 뒤를 쫓아 애나폴리스에 갔다면, 자신이 멍청한 겁쟁이처럼 굴며 아이의 앞길을 방해하려 하지 않았다면, 자신과 브래들리는 서로의 곁에서 그다음 해의 새해를 동부에서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이 아이에게 저지른 모든 죄와 아이가 인고해온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향한 과분하게도 다정한 브래들리의 애정은 여전히 아이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회한과 죄책감의 눈물이 금세 차올라 그의 뺨을 굴렀다. 전날 자신을 향하던 아이의 분노 서린 눈동자가 그의 머릿속을 일렁였다. 신부의 죄에 대한 화풀이로 자신을 모욕하고 그의 신앙심을 짓밟던 브래들리가, 어째서 정신을 잃은 자신을 집까지 데리고 와 보살펴주었을까?

신부는 문득 브래들리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면 아이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남겨놓았던 포스트잇 노트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죽고 난 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한마디라도 더 남겨놓고 싶었던 마음에 하나둘 남겨놓았던 마음의 조각들을, 브래들리가 발견한 것 일지도 몰랐다. 그저 흘러가는 마음에 써놓았던 메모들일 뿐이었는데. 설마, 자신의 고해가 담긴 유언도 읽은 것일까?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아이가 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차마 직접 말하지 못할 못난 모습까지도 전부 그 종잇장에 담겨 있었다. 브래들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이 드러났다는 생각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몸을 이끌며 브래들리의 방으로 향하는 신부의 뺨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다.

언뜻 바뀐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브래들리의 방에서, 이제는 익숙한 아이의 묵직한 체향이 은은하게 머무르고 있었다. 가지런히 접힌 채 침대 위에 놓인 깨끗한 수단과 파시아, 그리고 작은 쪽지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 당신의 소중한 수단을 함부로 망가뜨려서 죄송해요.

꽤나 깔끔한 손길로 서른세 개의 단추가 다시 꿰어진 그의 수단에서 브래들리의 애정이 느껴졌다. 침대 옆 협탁에는 브래들리가 사용한 듯한 바느질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전날 하루 종일 쏟아낸 눈물 탓에 짓무른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큰 손으로 한 땀 한 땀 작은 단추들을 하나씩 손수 매달았을 브래들리의 세심한 애정을 생각하니 금세 눈앞이 흐릿해졌다.

아쉽기만 한 아이의 온기에 수단을 조심스레 품에 안은 채 젖은 숨을 삼키던 신부는 브래들리의 노트를 몇 번이고 재차 읽고 나서야 절뚝거리며 방 안을 서성였다. 그가 남겨놓은 포스트잇 노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린 브래들리가 소중하게 숨겨놓았던 애나폴리스 입학 정보 팸플릿 안에는 신부의 유서 대신 브래들리가 남긴 또 다른 쪽지가 남아있었다.

— 매버릭. 내가 모르게 해사 입학을 방해하려 한 일, 용서할게요. 당신이 나에게 용서받아야 할 일은 그것뿐이에요. 제가 너무 큰 죄를 지었어요. 언젠가 전부 고해할게요. 미안해요. 그때까지 끼니 거르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요. 부족하고 못난 나를 항상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의 BB

떨리는 글씨로 꾹꾹 눌러 쓰여진 아이의 진심에 그 자리에 주저앉은 신부는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울음을 뱉어냈다. 밤새 그를 감싸던 다정한 온기와 애정 가득한 속삭임이 피부를 일렁였다.

전날의 흐릿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상흔으로 성한 곳이 없던 아이의 몸에 남은 아물지 않은 상처들과 검붉은 멍자국이 떠올랐다.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위험에 처하거나 다치지는 않았을까. 브래들리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고작 신부에 불과한 자신의 무력함이 심장을 틀어쥐었다.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비로우신 아버지가 험한 세상에서 방황하던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분의 빛으로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대로 바닥에 바짝 엎드려 얼마나 지났을지도 모를 시간을 기도에 집중하던 신부는 자신의 뱃속을 찌르는 이질적인 통증에 고개를 들었다. 문득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사과 조각의 달콤한 향이 환각처럼 그의 비강을 간질였다. 언제 마지막으로 느꼈을지 모를 날카로운 허기에 빠르게 침이 고였다. 아이의 애정이 돌아온 신부의 인생에 삶을 향한 열망 또한 제자리를 찾은 것이리라. 머지않아 다시 만날 아이를 생각하며, 그는 떨리는 몸을 이끌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브래들리를 위해, 그는 살아가야만 했다.

 


“매브는 비행기를 좋아하지? 그런데 왜 신부님이 된 거야?”

천진한 얼굴을 한 브래들리의 물음이 신부의 심장에 단검이 되어 꽂혔다.

신부가 서품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몇몇 탑건 동기들이 현충일을 맞아 브래드쇼 가족을 찾은 맑은 주말이었다.

한참 어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뛰어다니던 브래들리는 특별 미사를 끝내고 나서야 집에 돌아온 신부의 수단 자락에 매달렸다. 자연스레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 과자를 두어 개 받아먹고는 묵주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신부는 이전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무뎌진 상실의 아픔을 나누며 구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거나 최근 해군의 동향 따위에 관한 대화를 하던 그들은, 최근 개량된 톰캣을 활용한 지상 공격 전략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지난 날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조종사와 RIO들의 열띤 토론을 듣던 신부는 자연스레 한두 마디의 말을 덧붙였다. 마치 그 옛날의 탑건 교실로 돌아간 것처럼, 피를 끓게 만드는 전투기와 조종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오랜만에 그의 심장에 열기를 불어넣었다.

브래들리의 그 순진무구한 물음이 잠시 그의 머릿속을 벗어났던 죄책감을 끌어올리기 전까지는.

마치 그의 죄를 묻는 듯 자신을 향하는 브래들리의 순진한 둥근 눈매에 신부는 감히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무거운 침묵 너머 자신과 브래들리를 향하는 조심스러운 눈동자 무리에, 짧은 순간이나마 스스로의 자리를 잊고 입을 놀린 부끄러움이 그의 뺨을 타고 올랐다. 브래들리를 품에 안은 채 다른 이들에게 양해를 구한 신부는 조용한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이제는 네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큰 것 같구나, 브래들리.”

침대에 아이를 앉힌 신부는 그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은 채 브래들리의 작은 손을 만지작거렸다.

“뭘 이해해?”

습관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까딱인 브래들리가 매버릭의 손가락을 쥐며 물었다.

“구스, 아니…. 너의 아버지가 어떻게 하늘나라로 가셨는지, 알고 있니?”

“전투기를 타다가…. 사고가 났다고, 엄마가….”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고 밤새 울어대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캐롤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던 몇 년 전, 지금보다도 더 조그만하던 브래들리의 모습이 신부의 흐릿한 눈앞을 아른거렸다. 

아이는 이제 제법 씩씩하게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으나, 금세 눈물을 보이기 시작한 신부의 반응에 당황해 어물거린 브래들리는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사고가 말이야, 브래들리….”

이미 잔뜩 젖은 목소리가 볼품없이 흔들렸다. 입을 열기 무섭게 죄책감의 응어리가 그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 다정하게 온기를 나누어주던 브래들리는,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건 내가 낸 사고란다. 구스는 목숨을 걸고 조종사인 날 믿어줬는데, 내가…. 내가 네 아버지를 죽인 거야, 브래들리. 해군에서는 나의 죄를 물어 조종사의 자리에서 나를 쫓아낸거고. 이해하겠니?”

그제껏 신부의 손가락을 주무르던 브래들리의 손길이 그대로 멈췄다. 동그랗게 커진 사슴 같은 눈망울이 신부에게 고정되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의 무게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신부의 심장을 짓눌렀다. 아이의 손길을 벗어나 자신의 허벅지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은 신부는 그의 보잘것없는 일생에 가장 중요한 고해를 이어나갔다.

“너희 어머니는 관용을 베풀어 이런 못난 나도 아낌없이 보듬어 주셨단다. 그녀의 남편이자 너의 아버지를 죽인 나를 말이야.”

방 안에 내려앉은 무거운 침묵이 신부의 목을 조였다. 자신에게 고정된 그 큰 두 눈 너머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더 이상 시선을 맞추기 어려웠다. 고개가 이내 바닥을 향했다. 뺨을 구르던 눈물 방울들은 그의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브래들리의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브래들리가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브래들리가 그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얼음장같이 차가운 불안과 공포가 신부의 척추를 따라 기어오르기 시작하자 그의 몸이 덜덜 떨렸다.

이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브래들리를 보며, 신부는 매일 더 많은 시간을 자비로운 아버지에게 자신의 죄를 직면할 용기를 달라 기도하며 보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브래들리의 앞에 무릎 꿇은 신부는 마치 발가벗은 채 처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참담한 마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조금씩 얕아지는 호흡에 눈앞이 아득했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구나, 브래들리. 네 아버지가 아니라 나 따위가 살아남아서 미안해…. 네가 용서해 주지 않아도 이해한단다. 나는…. 미안해, 브래들리…. 네가 원한다면 나는….”

“맵, 매브.”

어느새 헐떡이기 시작한 신부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두서없이 사죄의 말을 뱉어냈으나, 그의 뺨 위로 닿은 브래들리의 따스한 손길에 방황하며 떠돌던 그의 의식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얼굴을 감싸는 다정한 온기에 고개를 든 신부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브래들리와 시선을 마주했다.

“울지 마, 매브. 다 괜찮아. 난 매브가 한 일, 전부 다 용서해.”

“오, 브래들리….”

짧은 숨을 터뜨린 신부의 시선이 흔들렸다. 맹세코, 그가 원한 건 이런 용서가 아니었다.

많이 컸다고 생각한 브래들리는, 여전히 너무나도 순수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가 아이에게 고해한 진실은 아직 어른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이해하기에 적어도 몇 년은 이른 것이었다. 

단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메꾸며 곁을 지켜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곧잘 저를 따르는, 부모님을 닮아 애정이 가득한 브래들리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니, baby bird?”

브래들리의 작은 손을 조심히 잡은 신부는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러운 손등을 어루만졌다. 구스가 살아 있었다면, 브래들리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나만 없었다면, 네 아버지와 매일매일 캐치볼을 하거나 네가 그렇게 원하는 강아지를 키울 수 있었을 거야. 더 큰 집에서 살았을 수도 있고, 더 멋진 장난감을 더 많이 가질 수도 있었겠지. 특별한 날이면 멋진 옷을 차려입은 너의 아버지가 너와 어머니를 데리고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구경시켜줬을 테고, 너는 아버지의 어깨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행복한 날을 보냈을 거란다.”

여전히 그의 지갑 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제는 낡고 바랜 아버지와의 기억이 신부의 눈앞을 아른거렸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의 어린 시절 유일하게 남은 행복한 기억이었다. 브래들리가 구스의 애정을 듬뿍 받아 행복했을 순간은 현실이 되지 못한 채 자신의 손에 의해 부서져 사라져 버렸지만. 그의 죄 많은 영혼을 인도해줄 신을 향한 헌신과 신앙에 집중하며 기도와 명상으로 한동안 잊고 있던, 스스로를 향한 날 선 혐오감이 심연에서 기어올라 그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너와 너희 어머니 두 사람은…. 지금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행복했을 거란다. 내가 그 모든 걸 너에게서 빼앗아 간 거야, 브래들리. 네 아버지가 그 모든 걸 걸고 날 믿어줬는데, 내가…. 이 손으로….”

“매브?”

머릿속이 아찔했다. 그제야 자신이 브래들리의 손을 지나친 악력으로 잡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신부는 퍼뜩 놀라 몸을 뒤로 물렸다.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을 응시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자신이 옮겼을 불안함이 가득했다. 아이 앞에서는 어째서 자꾸만 한심한 모습만 보이는 걸까. 그가 흘릴 자격조차 없는 무거운 눈물이 자꾸만 눈앞을 가렸다.

“미안해, baby bird. 널 겁먹게 하려던 건 아닌데….”

수단의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닦아낸 그는 잠시 떨리는 숨을 고르며 아이에게 보여서는 안 될 온갖 어둡고 곪은 감정을 재차 눌러 담았다. 

자비로운 아버지께서 저의 모자람을 가엾게 여기시어 아이에게 필요한 어른이 될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묵주를 단단히 쥔 신부는 아이를 안심시킬 작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당장 네가 답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날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단다. 네가 날 필요로 하는 한,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충분히 생각하고—”

“용서할게, 매브.”

“브래들리….”

침대에서 훌쩍 뛰어내린 브래들리가 신부의 어깨에 매달려 속삭였다. 반사적으로 아이의 작은 몸을 감싸안은 신부의 손이 덜덜 떨렸다.

“운이 나쁜 사고였으니까, 아빠도 매브를 용서했을 거라고 엄마가 말해줬어. 엄마도 우리 가족인 매브를 사랑하니까 당연히 용서한대. 그러니까 나도 매브 용서할 거야.”

아직 어리기만 한 브래들리에게 구스의 죽음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를 꺼냈을, 그가 아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캐롤의 한없이 거대한 애정에 신부의 눈가가 또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것이 아닌 사랑스러운 아이와 다정한 캐롤의 끝없는 사랑이 신부의 영혼을 위로했다. 미안해, 구스. 이 모든 게 네가 누렸어야 할 보물인데, 그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죄 많은 내가 받아도 되는 걸까. 뜨거운 눈물이 끊임없이 신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틀어막은 잇새로 자꾸만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이의 작은 손길이, 그에게는 너무나 과분하게 따스했다.

“I love you, Mav.” (사랑해, 매브.)

“I love you the most, Bradley. My baby bird.” (널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브래들리. 내 baby bird.)

이 세상 모두가 날 손가락질하고 경멸한다고 해도, 너와 네 어머니가 나를 사랑해 준다면 나는 이 저주 같은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 거란다. 언젠가 늠름한 사내가 되어 어린 시절 너의 아버지를 앗아간 나의 죄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너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겠지. 그 날이 올 때까지 나는 너의 다정한 무지에 의지하며 나의 욕심을 채우고, 그 댓가로 내가 죽는 날까지 너에게 내 모든 걸 주마.

아이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진심은 결국 입술을 넘지 못한 채, 아이의 온기를 단단히 껴안은 신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the….”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늦여름 저녁의 한가한 고해소를 찾은 참회자를 맞이하던 신부의 말이 뚝 끊겼다. 스크린을 넘어오는 그립고도 묵직한 체향과 뒤섞인 희미한 피냄새에 그의 심장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Forgive me, Father, for I have sinned.” (용서해주십시오, 신부님. 죄를 지었나이다.)

“Bradley?” (브래들리?)

영혼까지 뒤흔드는 브래들리의 목소리에 신부는 낡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브래들리의 모습에 신부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오, 브래들리, 세상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조금 초췌해진 브래들리의 입술 한 구석은 누군가에게 세게 맞은 듯 터져 있었다. 크고 작은 멍과 자잘한 상처들이 어두운 정장에 가려지지 않은 피부를 장식하고 있었다. 쇄골까지 열려 선글라스가 걸린 셔츠 깃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에는 금목걸이 대신 얕은 자상들이 두어 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스크린 너머로 신부를 향하는 헤이즐빛 눈동자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감정으로 신부의 영혼을 휘감았다.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열기가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자신과 브래들리를 갈라놓는 야속한 스크린을 쥔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마지막으로 고해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브래드, 브래들리. 거기 가만히 있으렴. 내가….”

가빠진 심박에 신부의 숨이 금세 짧아졌다. 당장이라도 고해소를 박차고 나가 스크린 너머에 있는 아이를 제 품에 안고 싶었다. 신부는 문을 향해 몸을 돌렸으나, 성급한 손길이 스크린의 빗살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덮었다.

“Father, I’m begging you. Please help me confess my sins.” (신부님, 부탁입니다. 제가 죄를 고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감정에 젖은 목소리로 애원하는 브래들리의 시선에 눈물이 일렁였다. 맞닿은 손의 열기가 뜨거웠다. 신부가 아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지금 이 고해소에 자리한 사람은 인간 피트 미첼이 아닌, 신의 대리인이라는 귀중한 직책을 어깨에 얹은 신부였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신부는 묵주의 십자가를 쥐고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억지로 눌러 삼켜내렸다.

“God bless you, my child. Tell me your sins.” (너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네 죄를 고하거라.)

작게 떨리는 신부의 목소리에 긴장된 침을 삼킨 브래들리는 스크린의 빗살 너머로 잡고 있던 신부의 손을 놓고 경건히 두 손을 모았다. 고개를 숙이는 아이의 손에 감긴 묵주가 작게 달그락거렸다. 지난 두 사람의 재회 이후 자취를 감추었던 신부의 낡은 묵주였다. 줄이 끊어진 묵주와 알알이 흩어진 묵주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고친 것이겠지. 또다시 그의 목구멍으로 치미는 울음을 삼키는 신부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저는 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때때로 살해했습니다.”

잠시 침묵하며 불안한 듯 떨리는 숨을 고르던 아이는 깊은 한숨을 뱉어내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 제 손 안에서 맥박이 끊어지는 순간 새까만 희열감을 느낀 적도, 갓난아이가 있다며 목숨을 구걸하는 이의 머리에 총을 쏘고 나서 일말의 연민조차 느끼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저를 받아준 범죄 조직을 향한 삐뚤어진 형제애를 증명하기 위해, 차마 셀 수 없이 많은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죄를 고해하며 묵주를 쥔 아이의 손이 덜덜 떨렸다. 신마저 그를 버렸다고 생각하며 방황하던 브래들리가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인내했을까. 신부가 차마 상상하지도 못할 아이의 지난 날들이 그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너무나 부족하지만, 지금은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 손에 죽은 이들이 돌아오지도, 제가 그동안 저지른 끔찍한 짓거리를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겠죠.”

“…….”

그 어느 때보다도 피곤해 보이던 브래들리의 몸에 오른 크고 작은 상흔들은, 살아남기 위해 지을 수밖에 없었던 죄를 속죄하려던 시도의 결과물들이었구나…. 아이의 고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은 채 울음을 삼키는 신부의 흐릿한 시선이 브래들리의 상처들을 재차 맴돌았다. 

“It would barely be a penance for the sins I have committed. But…. At least I can die trying.” (제가 그동안 저지른 죄악에 대한 속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죽을 각오로 노력할 수는 있겠죠.)

자신이 몰아넣은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끔찍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브래들리의 모든 죄악과 속죄는 오롯이 피트 미첼의 몫이었다. 아이의 떨리는 어깨를 품에 끌어안고 이제 다 괜찮으니 편히 쉬어달라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방황하던 시절에 대한 브래들리의 진실된 고해는 자신이 아닌 자비로운 아버지를 향하는 것이었고, 그 사이에 인간 피트 미첼의 자리는 없었다. 어깨에 두른 신성한 보라색 영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신부를 짓눌렀다.

위험을 마다하지 않으며 지난 날의 죄를 진심으로 참회하는 아이를 아버지의 구원으로 인도해줄 지혜와 용기를 나누어 주시기를. 무겁게 축축해진 눈을 감은 신부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성호를 그었다.

“쉽지 않았을 텐데도 진실되게 죄를 고하여 주어서 고맙구나, 아들아. 네가 진심으로 그 모든 걸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 나아간다면, 자비로우신 그분은 언제나 네 죄를 용서해 주실 거란다. 참회의 의미로—”

“그리고, 신부님….”

브래들리의 떨리는 목소리에 눈을 뜬 신부는 어느새 고개를 든 채 자신을 응시하는 브래들리와 시선을 마주했다.

“I have forced myself onto someone against his will. Someone who has given his unconditional love to my undeserving, pathetic soul.” (저는 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몸을 강제로 범했습니다. 비참한 영혼에 과분하기만 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준 사람에게 말입니다.)

“Bradley, that’s….” (브래들리, 그건….)

“I filled my twisted lust while insulting his divine chastity and devotion.” (저의 비틀린 욕정을 채우며 그의 신성한 순결과 헌신을 모욕했습니다.)

상기된 아이의 뺨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굴러내렸다. 신부에게 고정된 시선에서 뜨거운 진심이 느껴졌다. 지난날의 열기가 죄책감이 되어 신부의 목덜미를 훑었다. 나는 너처럼 강인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구원받지도 못할 영혼을 가진 죄인일 뿐이란다. 나무 빗살을 쥔 신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브래들리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작게 떨리는 신부의 손가락을 다시 한 번 감쌌다. 자신을 위로하는 다정한 온기가 신부의 폐를 짓눌렀다.

“Blinded by my own sense of inadequacy and inferiority, I had lost faith in him despite his love and trust that he had shown my whole life, and failed to see his genuine love behind his actions. And….” (스스로의 부족함과 열등감에 눈이 멀어, 평생 목격한 그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믿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잃은 채, 그의 행동에 담긴 진정한 애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스크린에 가까이 선 브래들리의 젖은 날숨이 스크린을 넘어와, 신부의 입술에 닿을 듯 가까웠다.

“And I failed to resist the temptation, kissed him while he was helplessly asleep with fever, and lied that everything was just a dream.”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열병으로 무력하게 잠든 이의 입술을 훔치고, 그 모든 게 그저 꿈이었다고 거짓을 고했습니다.)

놀란 숨을 삼킨 신부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날 밤, 정말로 브래들리와 입을 맞추었던 것이구나.

너무나 어설프고 순수했던 조심스러운 입맞춤에 담겨 있었을 아이의 진심에 이기적인 안도감이 그의 머릿속에 비죽 들어와 자리 잡았다. 그는 브래들리가 자신을 그런 식으로 봐줄 리 없다고 단정한 자신의 무의식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짧아진 호흡이 온갖 감정으로 난잡하게 뒤섞인 신부의 머릿속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눈물로 흐릿한 그의 시선을 마주한 브래들리의 눈동자에 깊은 후회가 일렁였다.

“It was me, Mav. You didn’t do anything wrong. I made you suffer all those years, because of my own pathetic lust that I couldn’t control—Because I was in love with you. I should’ve known it would have hurt you. I’m so sorry.” (제가 그런 거예요, 매브. 당신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제가 한심한 정욕을 통제하지 못해서, 당신이 그 오랜 세월을 고통받은 거예요—당신을 사랑해서 말이에요. 당신을 다치게 할 거라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요.)

“No, Bradley, that’s….” (아냐, 브래들리, 그건….)

“I don’t dare expect your forgiveness. But when the time comes…. I wish to die as your proud baby bird, not as a criminal.” (감히 당신의 용서를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때가 온다면…. 범죄자가 아닌 당신의 자랑스러운 baby bird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요.)

“Bradley….” (브래들리….)

브래들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한 울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신부의 손을 감싼 브래들리의 손가락에서 힘이 빠져 작게 떨렸다.

“I shouldn’t have come here. I’m being reckless, putting you at risk, but…. I couldn’t spend another moment of my life without confessing my sins to you.” (여기 오면 안 됐는데. 당신을 위험에 처하게 할지도 모르는 무모한 행동이에요. 하지만…. 당신에게 죄를 고하지 않고는 단 한 순간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요.)

“Bradley.” (브래들리.)

신부가 절박하게 스크린에서 멀어지려는 브래들리의 손을 붙잡았다. 조금 놀란 브래들리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What I wrote in that letter—I meant it. You might have kissed me that night, but…. That doesn’t change how I have been feeling towards you.” (내가 그 편지에 쓴 내용—진심이야. 그날 밤 네가 나에게 입을 맞췄다고 해도…. 그게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는 바꾸지 못한단다.)

신부의 진심 어린 고백에 다시 스크린 가까이 다가온 브래들리의 열기가 닿을 듯, 너무나 가까웠다. 나무 빗살을 넘어온 브래들리의 손가락에 입술을 가까이 붙인 신부는 그의 잇새를 떠나는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을 담았다.

“I love you, Bradley. Deeper than I should. You will always be my proud baby bird, and nothing will change that.” (사랑해, 브래들리. 내게 허락된 것보다도 더 깊이. 넌 언제나 나의 자랑스러운 baby bird일 거고, 그 어떤 것도 그걸 바꾸진 못할 거란다.)

“I love you, Maverick, with my whole heart. I will love you until my last breath.” (사랑해요, 매버릭. 진심으로. 내 마지막 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신부의 손가락에 그와 비슷하게 입을 맞추는 브래들리의 콧수염이 눈물에 젖어 축축했다. 굳이 목소리로 나오지 않은 감정이 나무 빗살 너머로 마주한 시선으로 뜨겁게 일렁였다. 서로의 손가락으로 닿은 부드러운 열기가 아쉬웠다.

“I’m sorry, Mav. I have to go. And please, Mav, do not leave the confessional to follow me. It’s for your safety.” (죄송해요, 매브. 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부탁이니까, 매브, 저를 따라오려고 고해소를 나서지 말아요. 당신 안전을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Could you stay just a bit longer, Bradley? I…. I missed you so much.” (조금만 더 있어주면 안 되겠니, 브래들리? 네가…. 너무 그리웠단다.)

“I’m…. so sorry, Mav. I’ve already stayed longer than I should’ve.” (정말로…. 죄송해요, 매브. 이미 너무 오래 있었는걸요.)

신부의 손가락에 상기된 뺨을 비비며 속삭이는 브래들리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목숨이 위험한 것은 아닐지…. 놓아주어야 하는 것을 알았으나, 신부는 차마 브래들리를 쉬이 떠나보낼 수 없었다.

“I’ll come back to you, Mav. I promise.” (당신한테 돌아올게요, 매브. 약속할 수 있어요.)

마치 신부의 걱정을 읽은 듯, 그를 위로하는 브래들리의 다정한 목소리에 울음을 삼켜낸 신부는 금방이라도 사라져 없어질 듯한 브래들리의 온기를 더 세게 잡으며 젖은 한숨을 뱉어냈다.

“Maverick.” (매버릭.)

슬픔으로 잔뜩 부은 브래들리의 눈매가 그를 부르는 목소리 만큼이나 부드럽게 휘어져 신부의 심장을 간질였다.

“You trust me, don’t you?” (저 믿으시죠?)

“Always.” (언제나.)

고개를 끄덕인 신부는 조금 더 머뭇거리다가 이내 손아귀의 힘을 풀어주었다. 아이를 위해 간신히 작은 미소를 지은 신부의 뺨이 축축했다.

“God bless you, Bradley. Please, stay safe.”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바라, 브래들리. 부탁이니 안전하게 지내다오.)

“You too, Mav.” (당신도요, 매브.)

아쉬운 시선으로 신부를 응시하던 브래들리는 이내 몸을 돌려 고해소를 떠났다. 아이의 그 모든 모습을 흐릿한 시선에 담은 신부는 문이 닫히고 나서야 짓누르던 울음을 터트리며 축축하게 무거운 눈을 질끈 감았다. 금세 휘발되어 사라진 아이의 온기와 체향에도 불구하고 신부는 나무 빗살을 틀어쥔 채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흐느꼈다.

사랑해. 사랑한다, 브래들리. 너를 너무나도 사랑해….

아무리 쏟아내도 계속 커지기만 하는 뜨거운 감정이 신부를 가득 채웠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이 보잘것없는 죄인의 목숨과 영혼을 바칠테니, 아이가 안전하게 속죄의 길을 걸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옵나이다….

신부의 간절한 기도가 묻힌 고해소는 밤이 깊도록 고요했다.

 

 

 


 

교류회 스케줄상으로 여기까지 회지에 실렸습니다!! 쓰는 동안에는 요 마지막 챕터를 쓰면서 괜히 혼자 눈물찍 했답니다... 부족함이 많은 글이었는데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실거라 믿으며 마지막편도 작업중이니 언젠가는 꼬옥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교류회에 보내기 위해 넣었던 커미션도 봐주세요!! 😭💘 언제 봐도 너무 아름다와...😭💕

https://x.com/aki4500199/status/1801429999364542845

https://twitter.com/JonoGbana/status/1801676116941488517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스매브 사랑해라~!!! 😭💘💘💖 평생 서로 곁에서 행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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