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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e Space (8)

Published on March 4, 2026 by acorn_field

[The Gorge] Levi x [Oblivion] Jack :: 텟이 침공하지 않은 세계의 잭이 협곡에 가지 않은 리바이와 만나는 이야기


 

텔톰 필모 크오

[The Gorge] Levi x [Oblivion] Jack

 

 

 

 


 

“리바이, 거기 있어요? 오버.” 

— 잭! 좋은 아침이에요! 잠깐만요. 금방 호숫가로 갈게요. 앞뜰에서 차에 짐을 싣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 안녕하세요! 부둣가에 나와 계셨네요. 날씨가 참 좋죠? 어, 잠은 잘 잤어요? 오버.

“보시다시피, 이 시간에 일어날 정도로 푹 잤어요. 마을에 가실 준비를 하는 거예요? 오버.”

— 네. 보트 하우스 고치면서 나온 폐자재도 버리고, 보트 용품점에 모터를 가지고 가서 제대로 고쳐올 예정이에요. 지금 나가면 저녁 전에는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버.

“그으렇군요… 어디 보자…” 

 

“흠. ‘마을에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미안해요.’ 연락처도 안 남기고 사라져서 완전히 도망간 줄 알았는데, 빈말이 아니고 정말 할 일이 있으셨네요? 오버.”

— 잭, 그건… 절대 그런 뜻은 없었어요. 무전기가 있으니까 당연히… 혹시라도 오해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해요. 오버.

“당신이 어제 계속 본인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혹시나 이런 뜻으로도 얘기한 건가 했죠. 왜, 그런 부류 있잖아요. 한 번 하고 나면 관심 없어지는 사람들. 오버.”

— 잭, 저는 정말, 절대로 그런… 다시 건너갈까요? 이제는 30분 정도면 갈 수 있어요. 오버.

“마을에 나가야 한다면서요? 오버.”

— 마을이 어디 가나요?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 게 미안해서 그래요. 이젠 수영으로 호수 건너는 것도 익숙해서 금방 건너요. 정말로. 보여드릴까요? 오버.

“호수 건너는 게 그렇게 쉬우면 왜 어젯밤에 간 거에요? 이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는 게 얼마나–”

 

“하아, 젠장, 미안해요. 화풀이 하려던 건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혹시 침대 옆에 있는 결혼사진 때문에 불편했어요? 말을 하지 그랬어요. 다음에 올 땐 서랍에 넣어 놓을게요. 오버.”

—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정말 미안해요, 잭. 저도 정말… 아침까지 당신이랑 같이 있고 싶었어요. 진심으로. 사실은… 

 

— 사실 약을 안 들고 가서, 혹시라도 자다가 당신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랬어요. 웬만하면 안 자고 버텼을 텐데,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잔 것도 있고… 당신 곁에 있으니까 마음이 편해서 자꾸 잠이 오더라고요. 정말 미안해요. 오버.

“약이요? 저번에 말했던 그건가요, 프라조신? 약 먹으면 사격 정확도 떨어진다고 했잖아요. 오버.”

— 잭, 그때는… 지금 저한테 사격 같은 건 전혀 안 중요해요. 그날 밤에도 말했잖아요. 호수에 있을 때는 웬만하면 자기 전에 먹을 거라고. 호수 건널 때 잊어버리고 안 들고 간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 오버.

“곧 중동에 간다면서요? 평소엔 먹지도 않았을 약 때문에 거기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미안해요, 리바이.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 알면서 괜한 말을 했네요. 당신이 다 받아주니까 자꾸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하… 정말 미안해요. 내가 한 말은 잊어버려요. 알았죠? 그리고 부탁이니까 그 약 먹는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오버.”

— 아뇨. 잭. 잭, 그러지 말아요. 제발요. 제 말 좀 들어줘요, 응? 그때 말한 건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에요. 믿어줘요, 잭. 아침에 혼자 있으면 불안해 할 거라는 걸 알면서 제대로 된 연락처도 안 남기고 사라져서 미안해요. 당신이 제멋대로 행동한 적 단 한 번도 없어요. 내가 정상이 아니라서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 젠장, 미안해요. 저는…

“리바이,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렇게 따지면 나도 정상은 아닌 거 알죠? 잔디밭에 흩어져있던 옷가지를 깔끔하게 정리해 준 것도, 내가 지쳐서 자는 사이에 깨끗하게 씻겨서 침대에 데려가 준 것도, 들꽃 꽂은 와인병을 침대 옆에 놓은 것도, 당신이 날 위해서 한 거잖아요. 그렇죠? 그걸 알면서도 침대에 혼자 있으니까 자꾸 나쁜 생각만 들어서…”

 

“… 젠장. 우리 진짜 바보 같은 거 알아요? 당신이 날 걱정해주는 건 알아요, 리바이. 그렇지만 나도 그만큼 당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날 위해서 스스로 뭔가 희생할 생각이라면, 행동하기 전에 먼저 말해줘요. 나도 똑같이 할 테니까. 프라조신 먹기 전에 나한테 말이라도 해달라는 거에요. 날 걱정한다고 혼자 몰래 먹지 말고. 알겠어요? 망원경으로 내 얼굴 보고 대답해요. 오버.”

— 알겠어요, 잭.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잠깐만요, 망원경이 이 근처에… 

 

— … … 아. 맞다. 크흠. 약 먹기 전에 당신한테 먼저 말한다고 약속할게요, 잭. 근데, 음, 정말 그렇게 크게 문제 되는 건 전혀 아니에요, 걱정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정말이에요! 원하신다면 사냥이라도 해서 보여드릴… 하하, 장난… 이에요. 표정 풀어요. 흠, 그, 어… 조금 쌀쌀하지 않나요? 몸은 좀… 어때요? 오버.

“흐음. 깨물린 곳마다 얼얼하게 열이 올라서 쌀쌀한지는 잘 모르겠던데. 몸이 어떤지는… 글쎄, 직접 보고 판단하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어차피 지금 보고 있죠? 하하. 망원경 다시 얼굴로 올리는 거 다 봤어요. 나 시력 엄청 좋거든요. 여기, 제대로 봐요.”

 

“… 어떤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아니, 숨만 쉬어도 안 쑤시는 데가 없어요. 특히 왼팔을 움직이면, 읏, 가슴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요. 여기, 잇자국 보여요? 젖꼭지가 부어올라서 옷을 입으려면 반창고라도 붙여야겠는걸요. 여기, 허리에 손자국도 났고… 걸을 때마다 허벅지 안쪽도 얼얼한데, 바지도 벗어서 보여줄까요? 오버.”

 

“… 지금 말 하고 있어요? 버튼 잘못 누르고 있는 것 같은데요? 뭐, 들으나 마나 미안하다고 하고 있겠죠. 하하. 아, 그리고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싫은 건 아니에요. 이 나이까지 살면서 이런 취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당신이 곁에 있는 기분이 드는 게 마음에 들어요. 오버.”

— 앗, 네, 네. 젠장, 버튼을 잘못 누르고 있었네요. 하하. 그, 저… 어제는 잭이… 아, 아니, 잭이 아니라, 제가, 그, 지나치게 흥분하는 바람에… 응? 아, 흠, 크흠, 너무 뚫어지게 봤나요? 미안해요. 여기, 망원경 내려 놓을게요. 그, 어제 지나치게 세게 깨물어서 불편하게 만든 것도, 반성하고 있어요. 마을에 가서 얼음 찜질팩이랑, 피부에 바를만한 거랑, 그, 반창고, 적당히 큰 거로 사 올게요. 더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오버.

“다신 안 그러겠다는 말은 안 하네요? 하하. 늦었어요. 음,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려면 빨리 출발 하셔야겠네요. 더 붙잡아 두지 않을게요. 조심해서 다녀와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잭, 오버 앤 아웃.”

— 금방 다녀올게요. 있죠, 잭, 그… 오늘도 아름다워요. 조금이라도 빨리 당신을 다시 품에 안고 싶어요. 저녁에 봐요. 리바이, 아웃.

 


 

— 안녕하세요, 잭. 낮잠 잘 잤어요? 오버.

“리바이? 지금, 하–음, 몇시죠? 벌써 노을이 지려고 하네. 오버.

— 곧 저녁 시간이에요. 잭, 그거 알아요? 방금 전까지 당신 옆에 다람쥐랑 새들 쉬었다 간 거. 디즈니 공주님 같아요. 오버.

“하하. 그랬어요? 마을에서 언제 돌아왔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나 안 깨우고 그냥 보고 있었어요? 오버.

— 한, 10분쯤 됐나? 무전 보냈는데 안 깨시길래, 언제 일어나시려나 궁금해서 보고 있었죠.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어요? 오버.

“괜찮았어요. 날씨도 좋아서 어제 갔던 길을 따라서 등산도 하고,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낮잠도 자고. 하하. 마을은 어땠어요? 보트 모터는 고쳐왔어요? 오버.”

— 네. 완전히 새것 같아요. 이젠 5분 정도면 호수를 건너갈 수 있어요. 그… 혹시 한 시간 정도 뒤에 시간 있으세요? 별거 없는 낚시 보트이긴 하지만… 호수 한 가운데서 저녁 먹는 거 어때요? 오버.

“이런… 있죠, 리바이, 저 사실… 조금 있다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흡, 댄스 수업이… 하하하. 미안해요. 나도 한 번 써먹어 보고 싶었어요. 흐흐, 한 시간 뒤에 봐요. 보트에서 먹을만한 저녁거리 준비해 놓을게요. 잭, 오버 앤 아웃.”

— 하하, 잭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완전히 속을 뻔했어요. 좋아요. 한 시간 뒤에 봐요. 리바이, 아웃.

 


 

가까워진 잭의 모습에 리바이의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짧은 수영복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늘씬한 다리 안쪽으로 자연스레 내려가던 시선을 재빠르게 올려 잭과 시선을 맞춘 그는 괜한 헛기침을 하며 미끄러지듯 보트를 틀어 부두에 가깝게 대는 일에 신경을 집중했다.

“Good evening, Jack.” (좋은 저녁이에요, 잭.)

“Good evening, Levi. Welcome back.” (좋은 저녁, 리바이. 돌아온걸 환영해요.)

빠르게 움직이던 보트가 만들어낸 은은한 호수 바람이 환한 웃음을 짓는 잭을 스치고 지나갔다. 넉넉한 흰색 셔츠가 펄럭이며 푸르스름한 잇자국이 남은 옆구리가 잠깐 드러났다. 어젯밤과 같은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욕실에서 보낸 게 무색하게도, 저녁노을이 내려앉은 아름다운 잭의 모습에 이미 호수 반대편에서부터 쿵쿵대던 심박이 더욱 박차를 가했다. 

“What’s that in your shirt?” (셔츠 안에 그거 뭐에요?)

몸을 낮춰 앉아 리바이에게서 자연스럽게 로프를 건네받은 잭은 보트를 간단히 정박시키며 리바이의 셔츠 앞섬으로 비죽 튀어나온 들꽃을 가리켰다.

“Oh, I’ve got you flowers.” (아, 잭한테 줄 꽃을 가지고 왔어요.)

셔츠 단추 두어개를 재빠르게 풀어낸 리바이는 호수를 건너는 동안 꽃잎이 상하지 않도록 품에 담아온 손바닥만 한 들꽃다발을 건네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Aw, that looks beautiful. Thank you, Levi.”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리바이.)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볼을 붉힌 잭은 꽃다발을 받아 들고 자연스럽게 향을 음미했다. 그다지 좋은 향기가 나는 꽃들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제 땀 냄새만 나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은 찰나의 순간 꽃다발과 함께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금세 날아가 사라졌다.

“I’m sorry. I didn’t get you flowers, but I’ve made some steak sandwiches.” (미안해요. 꽃은 준비 못 했지만, 스테이크 샌드위치는 만들어 왔어요.)

“Thank you, Jack. I’m starving for some good sandwich. Come on, let me give you a hand.” (고마워요, 잭. 맛있는 샌드위치 먹을 생각에 배가 고프네요. 여기요, 도와드릴게요.)

꽃다발을 본인의 셔츠의 가슴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담은 잭은 옆에 놓여있던 큼지막한 유리 용기를 건넸다. 저녁거리를 받아 낚싯배 중앙에 자리 잡은 쿨러 위에 내려놓은 리바이는 보트로 내려오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의심 없이 자신의 손을 잡은 잭을 제 몸쪽으로 당겨 돌리자 성인 남성 두 명의 춤사위 비슷한 움직임에 작은 낚싯배가 위험하게 흔들렸다. 익숙하게 배의 중심을 잡은 리바이는 놀란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잭의 허리를 감아 당겼다. 당황해 퍼득이던 손길은 반사적으로 리바이의 두툼한 팔뚝과 목덜미를 긁었다. 

벌어진 입술을 기습적으로 파고든 리바이는 얇고 단단한 허리를 더 가깝게 당기며 짧고 진하게 입을 맞췄다. 

“… I’ve missed you all day, Jack.” (… 하루종일 보고 싶었어요, 잭.)

이마를 마주한 리바이는 조금 가빠진 숨을 삼키며 진심을 가득 담아 속삭였다. 가깝게 마주한 그의 보석 같은 눈동자의 동공이 크기를 키우고 젖은 입술 위로 뜨거운 날숨이 스쳤다. 이내 눈매를 느슨하게 풀고 작은 웃음을 흘린 잭의 시원한 손길이 뺨을 감싸 쓰다듬자 척추를 따라 날 선 전율이 올랐다. 

“I missed you too, Levi.” (나도 보고싶었어요, 리바이.)

힘을 풀고 제 손길에 녹아들어 온 몸의 긴장을 푼 잭은 눈을 감고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 고개를 조금 틀며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는 애정 가득한 손끝에 음침한 욕망이 목덜미를 기어올랐다. 

“Nice jon boat you’ve got here.” (멋진 존보트네요.)

“Thank you. A bit old and tiny, but it floats.” (고마워요. 오래되고 작긴 하지만 여전히 물에 뜬답니다.)

아쉽기만한 입맞춤을 마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달콤한 입술을 다시 덮어 맛보고 싶은 욕심을 간신히 억누른 리바이는 쿨러 반대편 벤치에 그가 안전하게 자리 잡을 때까지 단단히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Are you ready for a private dinner cruise, sir?” (프라이빗 저녁 크루즈를 즐길 준비 되셨나요?)

“Aye, captain.” (네, 선장님.)

노을이 녹아들어 붉어진 뺨을 밀어 올리는 잭의 미소가 리바이의 가슴 안쪽을 아리게 만들었다. 괜한 헛기침을 하며 부두에 정박한 밧줄을 푼 리바이는 조금은 느긋하게 호수의 중앙을 향해 보트를 움직였다. 

 


 

그와 나누고 싶었던 대화는 한 없이 많았던 것 같은데, 정작 반대편에 앉아 말 없이 노을을 감상하는 잭의 옆모습을 보고 있는 리바이의 머릿속은 아무런 그저 하얗게 비었을 뿐이었다. 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느릿하게 팔랑이는 속눈썹이나 약간 구부러진 콧대 아래 자연스럽게 살짝 벌어진 입술을 응시하고 있으면 어쩐지 그가 느끼는 깊은 감정들이 옮을 것만 같았다. 

잭을 향하는 진심이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가 가득 담긴 시 구절로 노트 한가득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심장 속에서 방울방울 피어나 뱃속에 나비를 풀어놓는 뜨거운 감정을 정의하려니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졌다. 묵직하고 뜨거운걸 제 속에서 끄집어내는 순간 생각한 것과는 다른, 단순한 묘사의 나열이 될 것만 같았다. 

들고 있던 맥주병을 비우려 고개를 한껏 올린 잭의 턱선 아래로 목울대가 울렁였다.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쿨러에서 시원한 병을 꺼내 기계적으로 뚜껑을 딴 리바이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에게 새로운 맥주를 건넸다. 리바이가 자신 분량의 맥주를 끝낸 게 방금 전이었으니, 이게 그들이 가진 마지막 병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잭은 쿨러 빈 자리에 빈 병을 넣어놓고 리바이가 건네는 맥주병을 받아들였다.

“… This is my second time watching a sunset on the lake.” (… 호수 위에서 저녁 노을지는걸 보는건 이게 두번째에요.)

여전히 생각에 깊게 빠진 채 조용하게 속삭이는 잭의 미소에는 약간의 슬픔이 묻어나왔다. 조금 물기가 오른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붉게 짙어진 노을 빛을 반짝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나뭇잎처럼 팔랑이는 조그마한 낚싯배 위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그를 제 품으로 당겨 단단히 안았을 터였다. 

“You know, I think it’s a bit sad you’ll never truly know when you're doing something for the very last time, especially when you were so sure you'd get more chances. You leave things for the ‘next time’ that never comes.” (있잖아요, 정말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할 때를 알 수 없는 건 조금 슬픈 것 같아요. 특히 앞으로 더 기회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면 말이에요. 다시 오지 않을 '다음'을 위해 무언가를 남겨두게 되니까요.)

“Then we’ll need to do everything like it’s our last time.” (그러면 앞으로는 뭘 하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해야겠네요.)

행복했던 만큼 고통스러운 추억을 회상하고 있을 그의 무릎 위로 조심스럽게 손을 올리며 위로와 대답 그 어딘가의 말을 건네자 느슨하게 풀어진 그의 미소로 평소와 비슷한 온기가 돌아왔다. 

“You sure are a poet, aren’t you? A good one.” (당신 정말 시인이긴 한가봐요? 좋은 시인이요.)

“Like I said, I’ve eaten enough–” (전에도 말했듯이 말이죠, 제가 충분히 먹은–)

“Oh, stop it.” (거기까지 해요.)

리바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받아친 말에 고개를 저으며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 잭은 맥주를 두어모금 넘기고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았다. 

다시 마주한 어둑한 녹색 눈동자 너머로 열기가 아른거렸다. 제 손을 쓰다듬던 그의 손끝에 미약하게 힘이 들어가 피부를 파고드는 감각에 뱃속이 뜨겁게 울렁였다. 그의 무릎을 짚고 있던 손길을 천천히 움직여 그의 허벅지를 주무르자 부드러운 살결과 단단한 근육이 손바닥 아래서 약하게 긴장해 굳는 게 느껴졌다. 

“I’ve never been on the west side of the lake. Would you take me to your cabin?” (호수 서쪽은 아직 가본적이 없어요. 리바이네 오두막에 데려다 줄래요?)

 


 

“Welcome to the west cabin. Make yourself at home, please.” (서쪽 오두막에 온걸 환영해요. 편하게 계셔요.)

오두막의 문을 당겨 연 리바이는 잭의 등허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해가 지는 순간까지 노을로 가득하게 밝은 잭의 오두막과는 다르게 서쪽의 오두막은 이른 저녁이면 볕이 들지 않아 이미 어둑해진 상태였다. 

“Thank you. This is such a beautiful cabin, Levi.” (고마워요. 아름다운 오두막이에요, 리바이.)

잭의 오두막과 비교하자면 그다지 보잘 것 없는 오래된 건물에 불과했으나. 조심스럽게 건물 내부로 걸음을 옮긴 잭은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짧은 옷을 입은 그가 쌀쌀하게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따뜻한 차라도 대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문 옆에 쌓인 장작더미에서 크고 작은 장작 두어개를 집어 든 리바이는 그를 따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80년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두막은 여전히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지는 작은 공간이었다. 벽에 걸린 액자 속, 호숫가에서 아버지가 찍었던 오래된 사진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잭은 마치 어울리지 않는 공간을 방문한 외계인 같은 이질적인 존재감을 풍기면서도, 마치 처음부터 오두막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게도 보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사진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그가 자신만의 공간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뱃속이 울렁였다. 흰색의 셔츠 때문일지, 주위로 은은한 빛을 내는 그는 늘 어둡기만 했던 외로운 오두막을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끈적하게 목구멍에 들러붙는 음침한 상상들을 애써 떨쳐낸 리바이는 그의 진지한 옆모습에서 어렵게 시선을 돌리며 벽난로 앞에 몸을 낮췄다. 

“I almost forgot about this.” (이걸 잊고 있었네요.) 

혼잣말에 가까운 잭의 목소리에 리바이는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창가 근처의 서랍장 위, 마을에서 샀던 암탉 인형과 통조림 화분 옆에 고이 놓여있던 본인의 드론을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잭은 리바이와 시선을 마주하고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Thank you again for saving this from a crash.” (충돌하지 않게 잡아준 일, 다시 한 번 고마워요.)

“Of course. Don’t forget to take him back home.” (별말씀을요. 집에 돌아가실때 잊지 말고 데려가요.)

“I can teach you how to fly this next time you are on the east side.” (다음에 동쪽에 오면 이거 조종하는거 알려줄게요.)

“Are you sure? I might crash it because I don’t have fine motor skills like you probably do.” (정말요? 전 잭처럼 정교한 기술이 없어서 떨어뜨릴지도 몰라요.)

“Oh, don’t worry. I’ll fix it if you crash. I’m sure you’ll have fun.” (걱정 마요. 고장나면 고치면 되죠. 재미있을거에요.)

“Alright, commander. I trust your drone maintenance skills.” (알겠어요, 커맨더. 당신의 드론 정비 능력을 믿을게요.)

벽난로에 가까이 앉아 불을 붙이는 일에 집중하던 리바이는 제 뒤에서 들리는 호탕한 웃음소리에 간지럽게 열이 오르는 뺨을 긁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익숙한 손길 아래 금세 장작으로 불이 옮은 벽난로에서는 따스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Are those your heights and dates?” (여기 이것들, 당신 키랑 날짜에요?)

“Oh, the lines by the door?” (아, 문 옆에 선들이요?)

장작이 은은하고 오래 타들어 갈 수 있도록 나무들의 모양새를 정돈한 리바이는 무릎을 털고 일어나 문가에 선 잭에게 다가갔다. 

“Yes, except for… this one. That’s my dad’s.” (네, 여기… 이것만 빼면요. 이건 우리 아버지 키에요.)

이제는 거의 제 눈높이와 비슷한, 가장 높은 곳에 남은 오래된 칼자국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잠시 아버지와의 추억에 잠겨있던 리바이는 자신을 말 없이 바라보는 잭과 시선을 마주했다. 자연스레 그의 어깨를 둘러 감싸며 느슨한 미소를 지은 리바이는 눈을 감고 고개를 내렸다. 가벼운 입맞춤과 함께 자연스레 거리를 좁히며 허리를 감은 잭의 손길에서 진심 어린 위로와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목구멍에 들러붙는 묵직한 감정을 애써 삼켜낸 리바이는 잭의 뺨과 관자놀이에 연달아 입술을 가볍게 붙이며 말 없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리바이의 허리를 두른 팔에 힘을 넣으며 조용한 웃음을 흘린 잭은 근처 벽에 걸려 있는 액자들로 시선을 옮겼다.

“Is this you?” (이거 당신이에요?)

그가 가리킨 사진 속에는 세월이 묻지 않은 보트 하우스 앞에서 제 몸집만 한 도끼를 든 아이가 활짝 웃고 있었다. 영락없는 철부지로 보이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렸을 적 제 모습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열기가 뺨을 타고 올랐다. 

“Yes, that’s me. Probably around 1991, when my dad came back from Kuwait. I don’t really remember what we did that weekend, but I think we had a great time.” (네, 저에요. 1991년 즈음이었을 거에요. 아버지가 쿠웨이트에서 돌아오셨을 때니까. 그때 주말에 뭘 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Huh. I wonder if I’ve ever met your dad.” (흠. 내가 당신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을지 궁금하네요.)

“Wait, what? What do you mean?” (잠깐, 뭐라구요? 무슨 말이에요?)

“I was in Kuwait at that time, too.” (그때 나도 쿠웨이트에 있었거든요.)

“You were?” (정말요?)

턱을 문지르며 여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잭은 그제야 눈을 둥그렇게 뜬 리바이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I flew fighters for the US Navy right after college. After my final deployment in the Gulf War, I began working at NASA."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미해군에서 전투기를 몰았거든요. 걸프전에서 마지막 파병을 끝내고 나사에서 일 하기 시작했어요.)

“That’s…” (그런…)

현대 인류 최고의 업적을 이룬 우주 왕복선 오디세이 호. 그 우주선의 사령관이었던 잭이 굉장한 사람이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으나, 그런 그가 목숨을 걸고 전장의 하늘을 가로지르며 위험한 작전을 수행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였다는 사실에 또 다른 깊이의 존경심이 솟아올랐다. 알면 알수록 경이로운 그의 과거나 비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그의 겸손함은 차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경외감이 들어, 제 팔 아래 편안하게 몸을 기댄 채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있는 그의 머리 뒤에서 후광이 언뜻 보이는 것도 같았다. 

긴장한 입술을 축인 리바이는 그의 어깨를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이 본인의 의지로 자신의 곁에 있다는 믿기 힘든 현실에 귓바퀴까지 열기가 잔뜩 오르는 게 느껴졌다. 

“… That’s badass. Would you show me your pictures from back then later?” (… 정말 대단해요. 나중에 그때 사진 보여주실래요?)

“Yeah, I can, but, uh…” (네, 그럼요, 근데, 그…)

너무 뚫어져라 그를 본 탓일지, 조금 당황한 듯 허탈한 웃음을 터뜨린 잭은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혀를 굴리며 망설이던 그는 리바이의 허리를 두르고 있었던 손을 풀어 조금은 방어적인 자세로 자신의 팔을 매만졌다.

“Are you not… weirded out?” (불편… 하지 않아요?)

“What? Why would I?” (네? 제가 왜요?)

“Because I’m probably as old as your dad?” (제가 당신 아버지만큼 나이가 들었으니까?)

다시 마주한 잭의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리바이는 단 한 번도 잭과의 나이 차이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곧 40이 될 나이가 적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나, 자신이 지나치게 어린 탓에 그가 불편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몸을 숙여 그와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춘 리바이는 그의 날갯죽지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Besides the fact that you look only a few years older than I am, you are not my dad. So why should I care?” (당신이 나보다 몇년 더 나이들어 보이는 것도 그렇고,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잖아요. 근데 왜 내가 그걸 신경 쓰겠어요?)

“I think a normal person would say something different.”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른 말을 할거에요.)

“Like what?” (어떤 말이요?)

“Like…” (그러니까…)

벽에 걸린 네살짜리 아이의 사진으로 시선을 돌린 잭은 잠시 입술을 짓이기며 침묵했다. 잠시 후 깊은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돌린 잭의 눈동자에는 쉽게 읽기 힘든 무거운 상념으로 가득했다. 

“… How perverted I am for being turned on by someone this young.” (… 이렇게나 어린 사람한테 내 몸이 반응하는게 얼마나 변태같은지 말이에요.)

그제껏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올라가 있던 리바이의 입꼬리가 딱딱하게 내려와 굳었다. 그의 말에 담긴 정제되지 않은 욕망의 열기는 불에 달군 칼날같이 리바이의 뱃속을 쑤시고 들어와 기껏 억누르고 있던 사나운 감정을 건드렸다. 

그가 자신을 자극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서 반걸음 떨어진 리바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열 오른 눈두덩이를 세게 주물렀다. 

“Well, first of all, I’m not four. There’s nothing wrong about being… attracted to another adult. And second of all…” (글쎄요, 첫번째로, 전 네살짜리가 아니에요. 당신이 다른 어른한테… 끌리는건 전혀 이상한게 아니에요. 그리고 두번째로…)

하루종일 몇번씩이고 밀어낸 새까만 욕망이 자꾸만 머릿속을 뒤덮었다. 그의 작은 몸을 벽에 돌려 세우고 둥근 엉덩이에 손자국을 내며 아들뻘인 사내의 손가락으로 뒤를 쑤시는 게 얼마나 좋았기에 아주 박아달라 애원하듯 질질 흘리고 있는지 묻는 음침한 상상을 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는 좀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싶었는데… 

우후죽순으로 자라난 강렬한 감정들은 하나를 눌러 내리면 다른 게 머리를 불쑥 밀어 올렸다. 정욕을 밀어낸 자리에 들어찬 대상 없는 분노가 제멋대로 갈비뼈 안쪽을 긁어댔다. 나이에 맞지 않게 순수하기만 한 그가 의도치 않게 유혹을 할 때면 폭풍우 아래 나룻배처럼 하염없이 팔랑이는 제 심장에 자꾸만 짜증이 치솟았다.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결국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는걸 모르지 않았기에 나갈 길 없는 열기는 뱃속만 더욱 끓어오르게 만들 뿐이었다.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머리카락을 쓸어올린 리바이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굳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You should be careful what you say, Jack.” (말 조심하는게 좋을거에요, 잭.)

어쩌면 조금은 예의 없게 들렸을지도 모를 퉁명스러운 경고에 팔짱을 낀 잭은 고개를 살짝 꺾으며 몸을 돌려 리바이를 마주했다. 날 선 그의 시선이 리바이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자신의 말에 담긴 의미를 모르지 않았을 테니, 그게 오히려 잭에게는 재미있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Or what?” (아니면요?)

“Or I’m going to do things you might not like. And I don’t want that to happen.” (안 그러면 내가 당신이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을 하게 되겠죠. 그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아요.)

“Oh. Is that a promise?” (오. 정말 그렇게 해줄건가요?)

입꼬리를 비죽 올린 잭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으며 가까이 다가섰다. 방금 전까지 조금 위축되어 보이기까지 하던 잭의 눈동자 너머로는 지난 밤 뱃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흉포한 욕망을 부추기던 호승심이 돌아와 번뜩였다. 

진심으로 그를 걱정한 자신의 경고가 마치 도전장처럼 들리기라도 하는 걸까? 제 어두운 생각의 구석에서 본인이 어떤 꼴을 당하고 있는지 알게 되어도 그는 여전히 이런 반응을 보일까? 

사나운 기대감이 발톱을 드러내 흥분해 달아오른 심장을 긁었다. 그의 허리에 손을 올린 리바이는 단단한 근육으로 들어찬 얇은 옆구리를 느릿하게 주물렀다.

“A normal person would call it… a warning.”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경고하는 거라고 알아 들을텐데요.)

그의 골반을 조금 강하게 벽에 밀어 붙이며 몸을 가까이한 리바이는 위협적인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축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처럼, 흥분한 웃음을 흘린 잭의 손끝은 그의 골반을 틀어잡은 두툼한 팔뚝을 타고 올랐다.

“Well… Then I guess there’s no ‘normal person’ on this lake, kid.” (글쎄… 그럼 이 호숫가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꼬맹이.)

목덜미를 잡은 손끝에 힘을 넣으며 마지막 단어를 강조한 잭은 도발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순간 차마 눌러 내리지 못한 욕망이 리바이의 이성을 밀어냈다. 

사납게 목을 울리며 성급하게 잭의 입술을 덮은 리바이는 따닥이며 이빨이 부딪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그의 입안을 탐했다. 자신만큼 적극적으로 입술을 빨고 이를 세우는 잭의 열기마저 옮아와 눈앞이 아찔했다. 

저녁 내내 리바이를 갈증 나게 만들었던, 얇은 셔츠 아래의 작은 몸은 뜨거운 손길 아래 시원하게 미끄러졌다. 제 손으로 세 뼘 정도 밖에 안되는 짧은 등허리를 끈적한 손길로 뭉근히 누르며 오르내릴 때마다 흘러드는 잭의 낮은 신음이 이성을 흔들었다. 꼬리뼈를 따라 수영복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간 손으로 그의 엉덩이를 콱 틀어잡자 고통스러운 신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꺾어올 린 잭의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그제서야 고개를 든 리바이는 급한 숨을 헐떡이며 잭을 구석구석 관찰했다.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 셔츠를 틀어 잡은 손길이 조금 떨리는걸 알아 차리고 나니 그저 흥분으로 어둑해 보였던 눈동자로 미약하게나마 공포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사과의 의미로 가볍게 그의 콧잔등과 눈두덩이에 입을 맞추며 말랑한 엉덩이를 살살 쓰다듬은 리바이는 수영복 아래서 손을 빼내 그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마지막 단추까지 풀어진 셔츠 깃을 활짝 연 리바이는 군살 없이 홀쭉하게 들어간 아랫배부터 급히 오르내리는 가슴팍까지 구석구석 자리 잡은 지난 밤의 깊은 흔적을 하나하나 유심하게 관찰했다. 특히나 사정없이 깨물린 왼쪽 유두 주위는 끔찍할 정도로 새파란 멍이 들어있었다.

잭이 강한 정신력과 타고난 도전 정신으로 자꾸만 저를 도발한다 할지라도, 그가 자신과 비슷하게 고통에서 쾌감을 느낀다는 보장은 없었다. 동성과 제대로 된 관계조차 가져본 적 없는 그가 반강제적으로 주어지는 고통에 발버둥 치며 헐떡이던 절박한 애원이 귓가를 아른거렸다. 잭이라면 비정상적인 성벽을 가진 자신을 위해 본인의 공포심이나 불편함을 말 없이 감수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무겁게 목을 죄었다.

다시 시선을 마주한 녹색 눈동자는 자신의 생각이라도 읽으려는 듯 바쁘게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짐승 같은 사내 앞에 제 보드라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으니, 지나치게 길어진 침묵에 더욱 불안함을 느낀 것 처럼 보였다. 자신의 허리춤에 오른 그의 손은 여전히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픈게 좋아요, 잭? 당신이 싫다면 앞으로는 절대 안 할 테니, 제발 진심으로 대답해줘요.

그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봐야 바들거리는 입꼬리나 올리며 자신은 괜찮으니 해볼 테면 해보라는 말만 되돌려 줄 것만 같았다. 그의 도발에 머릿속 맹수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간당간당하게 발끝이나 붙어있는 이성으로는 통제하기 불가능할 터였다. 

그때 잭의 머리 옆으로 문가를 따라 대충 그어진 오래된 선들이 리바이의 시선에 들어왔다. 

상식의 범위에서 벗어난 위험을 알아차린 그는 자신에게 당장 멈추라 요구할까? 아니면 그는 정말로 제 손으로 주어지는 고통을 즐기는 걸까? 

마른침을 삼킨 리바이는 느릿하게 그의 복근과 가슴을 쓸어 올렸다. 조금은 긴장을 푸는 듯싶었던 잭은 쇄골 바로 위의 목을 잡아 누르는 거친 손길에 벽에 등이 바짝 붙고 나서야 놀란 숨을 터뜨렸다. 뒷주머니에서 포켓 나이프를 꺼낸 리바이가 익숙한 손길로 손목을 가볍게 휘두르자 묵직하게 철컥이며 날카로운 칼날이 펼쳐졌다. 등 뒤에서 요동치는 벽난로의 은은한 불빛에 번뜩이는 날붙이로 잭의 시선이 향했다. 순간 쿵쿵거리며 빨라진 그의 심박과 얕아진 호흡이 손바닥을 간질였다.

당장이라도 그가 불쾌감을 드러내며 제 손을 쳐냈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으나, 여전히 별다른 반항이나 질문 조차 꺼내지 않은 그는 그저 조금 불안한 시선으로 리바이를 응시할 뿐이었다. 뱃속 깊은 곳에 숨은 음침한 욕망은 군침을 흘리며 머릿속으로 역겨운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이가 뿌득 갈릴 정도로 턱에 힘을 주며 이성을 틀어 잡은 리바이는 제 본모습을 애써 무시했다. 그의 목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아 고정한 채 천천히 포켓 나이프를 움직인 그는 뭉툭한 칼등으로 잭의 턱을 가볍게 밀어 올렸다. 긴장된 숨을 삼키며 순종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잭은 그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그의 목을 잡아 누른 손에 조금 더 힘을 넣으며 칼날을 정수리 근처로 올리자 얕은 숨을 터뜨린 잭이 리바이의 허리춤을 틀어 잡으며 몸을 떨었다. 

“Levi…” (리바이…)

“Shh. Don’t move.” (쉿. 움직이지 마세요.)

팔랑이는 눈꺼풀 아래로 그의 눈매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대로 고개를 숙이자 체념한 듯 눈을 꾹 감은 그는 여전히 저를 반기며 보드라운 입술을 열어주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화를 내며 다신 이런 정신 나간 짓은 하지도 말라 경고할, 도박에 가까운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리바이는 잭이 자신의 지나친 장난도 받아들여 줄걸 알았다. 

… 그리고 그가 본인의 안전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받아들여 줄 거라는 사실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잭의 맛이 남은 입술을 핥으며 그의 키에 맞게 나무 문가에 칼날을 두어번 꾸욱 박아 넣은 리바이는 그제야 느슨한 미소를 지으며 포켓 나이프의 칼날을 접어 넣었다. 

한껏 긴장해 굳어있던 작은 몸을 벽에서 떼어내며 돌려 안은 리바이는 자신이 방금 전까지 위협적으로 잡아 누르고 있던 목선을 살살 쓰다듬고는 그의 귓바퀴에 입술을 바짝 붙이며 낮게 웃었다.

“There you go. I was taller than you when I was 17.” (됐다. 열일곱살때 제가 당신보다 컸어요.)

리바이는 문가에 새로 새겨진 깊은 칼 자국을 손끝으로 매만지고는 그 위로 몇 인치는 떨어져 있는, 20여년 전 아버지가 그어주었던 선을 툭툭 가리켰다. 그제야 몸에서 긴장을 뺀 잭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내 어깨 너머로 날 선 시선을 보낸 그는 팔꿈치로 리바이의 복부를 조금 강하게 퍽 찔렀다.

“Very funny, Levi Kane.” (아주 재밌네요, 리바이 케인.)

“Oof, Man down, Commander Jack! Please call the medic!” (어윽,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잭 사령관님! 위생병을 불러주십쇼!)

“Shut up. You’ve earned it.” (닥쳐요. 당해도 싸니까.)

반 걸음 물러선 채 과장된 신음을 흘리며 배를 감싸던 리바이는 이내 실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린 잭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아랫입술을 물어 애써 웃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리바이는 몸을 숙인 채로 잭의 팔 아래로 머리를 밀어 넣고는 장난스럽게 잭의 뺨과 입술에 쪽쪽 거리며 입술을 맞췄다. 

“Are you upset? I’m sorry, Jack. I won’t do it again.” (화났어요? 미안해요, 잭. 다신 안 그럴게요.)

큼지막한 덩치에 밀려 벽에 등을 부딪힌 잭은 정신없이 쏟아지는 낯간지러운 입맞춤과 진심 어린 사과에 결국 참지 못한 웃음을 터뜨렸다.

“That’s fine. I’m not mad.” (괜찮아요. 화 안났어.)

한껏 몸을 숙여 눈높이가 비슷해진 리바이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잡은 잭은 상기된 얼굴 한가득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입술을 마주했다. 입안 구석구석을 음미하듯 천천히 매만지고 감싸는 다정한 입맞춤에 리바이의 목구멍 너머에서 뜨거운 신음이 흘렀다. 

느리고 부드럽게. 그게 잭의 방식이었다. 제 심장에 들러붙은 끈적한 것들도 녹아 사라지게 만드는 그의 애정 가득한 온기에 심장 가득 행복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마지막으로 짧게 그의 입꼬리에 입술을 붙인 리바이는 잔뜩 풀어진 입꼬리를 내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상기된 뺨으로 흥분된 미소를 지은 잭에게서 조금 물러선 리바이는 축축한 콧수염을 손바닥으로 대충 닦으며 들고 있던 포켓 나이프를 건넸다.

“Here. Would you mark my height as well?” (여기요. 내 키도 남겨줄래요?)

“Of course. Let me just…” (당연하죠. 잠깐…)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포켓 나이프를 건네받은 잭이 근처에 자리 잡은 의자로 손을 뻗었다.

“You don’t need that. Come here.” (그거 필요 없어요. 이리 와요.)

잭의 손을 잡아당긴 리바이는 그대로 무릎을 조금 숙여 그의 허벅지를 단단히 끌어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격에 비해 묵직한 잭의 몸은 어렵지 않게 공중에 떠올랐다. 놀란 소리를 내며 팔을 퍼득이던 잭은 리바이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Careful, Lev—Hey, st, stop that!” (조심해요, 리바—잠깐, 그, 그만!)

음모가 복슬복슬하게 오른 그의 단단한 아랫배에 뾰족한 콧방울을 비비다 혀끝으로 배꼽 근처를 할짝대자 아랫배를 떨며 헐떡이는 웃음을 터뜨린 잭은 온 몸을 비틀며 리바이의 입을 손으로 막으려 애썼다. 제 품에서 발버둥 치는 건장한 성인 남성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정적으로 잭의 허벅지를 단단히 끌어안은 리바이는 그저 어깨를 흔들며 낄낄거릴 뿐이었다. 

“Alright, I’ll get some more later.” (알았어요. 나중에 더 하면 되죠 뭐.)

입꼬리를 잔뜩 올린 리바이는 그제야 잭의 손에 쪽쪽 입술을 붙이며 문가에 등을 대고 척추를 바짝 붙여 섰다. 

“Good. Stay still.” (좋아요. 가만히 있어요.)

잔류하는 웃음을 애써 삼켜내며 리바이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린 잭은 리바이의 얼굴 멀리 떨어뜨린 손목을 휘둘러 포켓 나이프를 열고 제법 진지한 손길로 나무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두세번 힘을 넣어 나무에 자국을 새긴 잭은 포켓 나이프를 접고 나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리바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Congrats, Levi. You are half an inch taller than your dad.” (축하해요, 리바이. 아버지보다 반 인치 더 크네요.)

“Finally, haha. Thank you.” (드디어, 하하. 고마워요.)

몸을 조금 틀어 시선을 올린 리바이는 문가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반듯한 선을 쓰다듬는 애정 가득한 손끝을 바라보다 잭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새 어둑해진 창밖에서는 조용한 호수 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타닥이며 타들어 가는 벽난로의 따스한 붉은 기운이 말 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잭의 뺨을 물들이고 있었다.

무거운 감정들이 일렁이는 그의 보석 같은 눈동자는 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뺨을 감싸는 손길을 따라 그의 상념이 전해질 것만 같았다. 시선을 마주한 채 그의 손바닥에 입술을 붙이고 고개를 기대자 부드러운 미소가 그의 입꼬리를 조금 끌어올렸다.

“What’s on your mind, Jack?”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잭?)

“A lot of things.” (여러가지요.)

“Do you want me to get rid of them?” (아무런 생각도 안 나게 해줄까요?)

그의 몸을 얼굴 가까이 당겨온 리바이는 그의 배꼽 바로 위에 깊게 입술을 붙였다. 열 오른 숨을 터뜨린 잭은 리바이의 머리카락을 틀어 쥐며 어깨를 긁었다.

“H, how?” (어, 어떻게요?)

“There are many ways to take things out of your mind.” (생각을 없애는 방법은 많죠.)

 

 

 


 

아휴 열심히 낋여서 두 사람 붙여놓았으니... 둘이 꽁기꽁기 귀엽게 지내는게 많이 보고싶습니다 🥰

우주 비행사들은 군대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전투기 정도는 몰아야 우주 왕복선을 조종할 능력이 있는거겠죠... 생각할수록 대단해요 😇 덕분에 왠지 리바이 아버지랑 같은 시대에 전쟁나간 군인들이 되어버려서 더욱 맛있네요... 짱

텔톰 크오도 룻맵도.... 나이차이가 맛있어요 얌얌... 사실 잭은 우주에 갔다왔으니까 62살 먹어도 오블리비언 그때 그 얼굴에서 많이 안 바뀌었을거라 ㅋㅋ 속내는 진짜 영감일텐데 리바이보다 그렇게 나이 많이 보이지는 않을 거라는게 진짜 맛있는 것 같아요 ㅎㅎ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기쁩니다 🥰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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