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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e Space (1)

Published on March 4, 2026 by acorn_field

[The Gorge] Levi x [Oblivion] Jack :: 텟이 침공하지 않은 세계의 잭이 협곡에 가지 않은 리바이와 만나는 이야기


 

 

텔톰 필모 크오

[The Gorge] Levi x [Oblivion] Jack

 

 


 

RPS 크오인 관계로 구독자 공개로 올립니다. 🥰 

 


 

 

호숫가 오두막을 찾은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이었다. 

 

비포장 도로를 20분 넘게 운전해야 닿는 곳이었기에 여전히 인적은 드물었다. 오래된 나무가 폭풍우에 쓰러지며 보트하우스 일부를 덮친 탓에 거치대에 보관 중이던 보트 엔진이 박살 난 것을 제외하면 그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거의 없었다. 하루 정도는 느긋하게 쉬며 여독을 풀고 보트 하우스와 보트 엔진을 고치기로 결정한 그는 느긋하게 맥주로 목을 축이며 오두막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아담한 크기의 오두막이었으나, 구석구석 들어찬 거미줄과 먼지를 털어내고 발전기와 수도관 따위를 점검하고 나니 어느새 늦은 봄의 해가 기울고 있었다.

 

 

호수 서쪽에 위치한 오두막을 뒤덮은 붉은 석양은 호수를 붉게 물들였다. 오리 떼가 지나가며 일으킨 작은 파동에 수면이 반짝이며 시신경을 자극했다. 잠시간 호수를 멍하니 응시하던 리바이는 폐를 가득 채운 담배 연기를 흩뿌렸다. 호수 반대편에서 보는 석양은 어떤 모습일까. 

 

재떨이에 조심히 담배를 올려 놓은 리바이가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자 오래된 나무 애디론댁 의자가 삐걱거렸다. 비슷하게 낡은 나무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검은색 노트를 들어 볼펜이 끼워진 페이지로 넘기자 줄이 죽죽 그어진 문장과 단어들이 그를 맞이했다. 

 

호수. 무성한 나무 사이. 수사슴. 총성. 희열감—

 

오두막이 자리 잡은 카운티에서 날아든 재산세 납부 통지서를 보고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을 표현하려다 포기한 글이었다. 어느새 심연에서 기어올라 뱃속을 옥죄는 불안감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든 그는 페이지를 한 장 넘겨 위쪽 구석에 오늘의 날짜를 기록하고 떠오르는 것들을 끄적였다.

 

 

If the twilight

behind me

blinds you,

나의 뒤로 펼쳐진 

석양이

눈을 멀게 했다면,

 

Run away

도망 가세요

 

before the shadow

inside me

terrifies you.

내 안을 뒤덮은

그림자가

당신을 두렵게 만들기 전에.

 

This is my

only warning,

이게 나의

유일한 경고입니다.

 

because 

I’m here

alone

waiting for you...

왜냐하면

나는 이곳에서

외로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조금 더 드러내 보는 건 어떤가요?

 

 

문득 마지막 상담에서 의사가 건넨 조언이 리바이의 귓가를 맴돌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미간을 구긴 그는 글자들 위로 못난 줄을 죽죽 그었다. 제 안에 있는 비정상적인 이면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최대한 숨기는 게 모두를 위하는 일이었다. 자제하지 못한 제 안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한 없이 따스한 애정만을 담았던 연인의 시선이 공포나 경멸 따위로 차갑게 물들었던 순간들이 떠올라 리바이의 심장을 찔러댔다.

 

“... 젠장.”

 

욕설을 짓이기며 볼펜을 대충 끼워 덮은 노트를 테이블 위에 던져 올린 그는 재떨이에 올려진 채 혼자 조금 타들어 간 담배를 털어 물었다. 호수 너머의 동쪽 하늘에서는 새까만 밤의 장막이 절벽을 드러낸 산등성이를 뒤덮고 있었다. 자욱하게 뱉어낸 담배 연기가 사라질 때 즈음, 언제부터 피어올랐을지 모를 흐릿한 연기가 어둑한 산을 배경으로 드러났다. 긴장한 리바이의 시선은 호수 반대편에 위치한 오두막의 굴뚝으로 이어지는 연기를 따라 내려갔다. 

 

 

그의 기억 속에서 무너지기 직전의 작은 헛간과 허름한 나룻배가 묶여있는 목재 부두가 전부였던 호수 반대편의 작은 평지는 새로 지어진 단정한 목재 오두막과 하얀 보트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 보다도 리바이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보트하우스 위에 자리 잡은 새하얀 헬기였다. 개인 헬리콥터를 소유하고 있는 주머니 두둑한 누군가가 땅을 사 개발한 모양이었다.

 

겨우 그의 엄지손톱을 조금 넘는 크기의 오두막은 맨눈으로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시신경은 오두막의 큼지막한 창문 너머를 가득 채운 새빨간 석양을 받은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영을 쫓았다. 

 

오두막이나 보트하우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하얀색 헬리콥터라니.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시야 중심에 자리 잡은 이질적인 존재감을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였다. 호수 반대편은 길도 제대로 내기 힘들어 접근이 어려운 지형 이었기에, 당연히 이곳에는 혼자밖에 없다는 착각을 한 채 맥주나 홀짝이며 공상에 잠겨 있던 게 우스웠다. 작전 도중이었다면 자신에게 목숨을 맡긴 부대원들이 이미 세상을 하직했을 테지.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조용한 봄날의 저녁이었다. 

 

해를 등진 채 오두막의 그림자에 숨은 리바이는 전술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아직 청소하지 못해 벽난로에 불을 떼지 않은 덕분에 타깃은 그의 존재조차 모를 터였다. 그가 애용하는 바렛 저격소총이 있었다면, 아니, 채 다섯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놓인 아버지의 사냥용 소총을 집어 든다면, 그림자가 잠시 멈춘 순간을 예측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한때 깨끗하게 정돈되고 관리되었을 오두막의 한 가운데 선 리바이는 얼굴 반쪽이 날아간 채 피를 뿜어내는 얼굴 모를 이방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상 속의 역한 피비린내가 알코올로 가득한 내장을 비틀었다. 자신의 발아래 비참하게 흩뿌려진 피와 고깃덩이 사이로 드러난 선량한 타인의 눈동자가 해명을 바라듯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큼지막한 생선 한 마리가 철퍽이며 호수 위로 뛰어 올랐다 이내 물 속으로 사라졌다. 석양이 생기있게 파동치는 호수는 어둑한 상념에 잠겨있던 리바이의 시선을 돌리기 충분했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리바이는 한숨을 흘리며 피곤한 눈꺼풀을 짓눌렀다. 빈 속으로 반나절 동안 맥주만 들이 부은 탓일테지. 그리 생각하면서도 발아래 위치한 쿨러로 향한 손길은 맥주 한 캔을 더 꺼내 들었다. 삐걱거리는 의자에 기대 앉은 그는 손끝을 얼얼하게 만드는 차가운 캔을 주무르며 다시 호수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한 호수가 이방인에게 침범 당했다는 사실에 그의 몸과 마음은 쉬이 긴장을 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편하게 쉬는 건 물 건너 갔군. 

 

목구멍과 뱃속을 식히는 맥주의 한기에도 제멋대로 끓어오르기 시작한 원초적인 불안감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순간 번쩍인 강렬한 빛줄기가 감긴 눈꺼풀을 꿰뚫고 들어와 시신경을 자극했다.

 

게릴라군의 저격 총 스코프.

 

언제 빠져들었는지도 모를 잠에서 깨어난 순간 테이블을 넘어뜨린 리바이는 본능적으로 제 옆에 놓여있던 사냥용 소총을 집어 들고 자세를 낮췄다. 

 

테이블이 넘어지는 요란한 소리 사이로도 그의 청각은 예민하게 총격을 기다렸다. 무턱대고 선제 사격을 가하기에는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가 턱 없이 부족했다. 고요한 순간을 틈타 테이블 위로 소총을 올린 리바이는 이따금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방향으로 조준경을 집중시켰다. 

 

갈비뼈 사이로 빠져나오기라도 할 듯 쿵쿵거리는 심장과 신경 말단까지 솟구친 아드레날린으로 손이 볼품없이 덜덜 떨렸다. 흔들리는 조준경과 스코프는 급한 숨을 헐떡이는 그의 시선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채 숨을 참은 리바이는 조준경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최대한 느릿하게 날숨을 흘렸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쫓으며 스코프를 조정한 그가 무전기를 찾아 제 왼쪽 가슴팍을 더듬었으나,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통신 장비 조차 장착하지 않은 채 낮잠을 자고 있었나?

 

짜증스럽게 조준경에서 시선을 뗀 리바이는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보고 나서야 무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축축하게 젖은 검은 티셔츠만이 리바이의 상체를 감싸고 있었다.

 

 

아직은 서늘한 기운이 남은 봄바람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리바이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늦은 오후의 해가 내리쬐는 호수 주변으로는 온갖 새소리와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만 가득했다.

 

오감을 자극하는 주변 환경을 알아차리자 제정신이 돌아올 때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곳은 살인적인 뙤약볕이 내리쬐는 타국의 사막 한 가운데가 아니었으며, 자신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인물은 자신을 죽이려는 게릴라군의 저격수가 아니었다. 

 

 

어깨에 견착 된 소총의 개머리판에 이마를 기댄 리바이는 안도의 한숨을 뱉어냈다. 무턱대고 사격을 가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호숫가의 이웃이 자신에 의해 사살당하기라도 했다면…

 

한 번 흥분해 달아오른 심박은 당최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날 저녁 그의 머릿속을 뒤덮었던 끔찍한 상상 속 피비린내가 슬금슬금 기어올랐다. 당장이라도 선량한 이웃을 향해 조준한 총구를 내리는 게 우선이었으나, 고개를 든 리바이의 시선은 다시 스코프로 향했다.

 

 

 

 


 

 

 

보트 하우스 뒤에 몸을 숨긴 잭은 놀라 가빠진 숨을 억누르려 노력하며 망원경을 더욱 세게 틀어잡았다. 아무리 궁금해도 이웃의 집을 함부로 염탐하는 게 아니었는데. 궁금증이 고양이를 죽인다더니, 자신이 그 ‘고양이’가 될 줄이야. 

 

 

따스한 오후의 볕을 즐기며 수영을 즐기던 잭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평화로운 소음에 파묻혀 희미하게 들려오는 전기톱 소리를 듣고 나서야 버려진 줄로만 알았던 호수 서쪽의 오두막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은 평화롭고 무료한 휴가를 보내던 나사 수석 우주비행사의 관심을 곧바로 사로잡았다. 맨눈으로는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기에 궁금함을 참지 못한_—딱히 참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_그는 그날 아침 날아든 물새 떼를 보기 위해 부두에 올려놓았던 망원경을 집어 들었다.

 

잘 정돈된 뒷마당에 선 젊은 남자는 전기톱으로 보트 하우스의 일부를 덮친 오래된 나무의 큼지막한 가지를 잘라낸 참이었다. 검은 티셔츠를 입은 그는 물고 있던 담배를 마지막으로 깊게 들이마신 후 대충 어딘가로 던져버리고 두툼한 나뭇가지를 발로 밀어냈다. 일을 시작한 지 한참은 지난 듯, 보호경을 벗어내고 티셔츠 자락을 들어 올려 땀에 젖은 얼굴을 닦아내는 그의 주위로는 크고 작은 가지들이 크기별로 정돈되어 있었다.

 

집주인인것 같은데, 호수 반대편에 들어선 자신의 집을 보고도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기에 언제 그가 돌아왔는지는 영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일반적인 전화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외진 곳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니, 타인을 반기지 않을 거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호숫가의 유일한 이웃을 귀찮게 하여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대화 상대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들떠있던 마음을 억누른 잭은 망원경으로 젊은 남자를 뒤쫓았다. 

 

오두막 뒷문에 놓인 애디론댁 의자 옆 쿨러를 휘적인 남자는 물통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내용물을 한숨에 비우고 조금 남은 물을 땀에 젖어있던 머리 위로 흩뿌린 그는 빈 물통을 조금 떨어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의자에 털썩 앉아 젖은 머리를 털어냈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 듯 의자에 기대 누운 그가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구겨져 있던 미간을 풀자 의외로 유순해 보이는 인상이 드러났다. 

 

깔끔하게 관리된 수염을 가진 그는 30살 중후반쯤 되어 보였다.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곳일까, 아니면 본인이 직접 구매한 땅일까. 어떤 사연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텐데…

 

오랜만에 만난 타인의 존재감에 다양한 궁금증이 잭의 가슴 안쪽에서 방울방울 부풀어 올랐다. 아담한 오두막 근처를 대충 훑어보았으나 잠재적 '비상 상황'이 닥쳤을 때 소형 헬기를 착륙시킬 만큼의 개척지는 없어 보였다. 보트라도 있었다면 근처에 다가가 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을거라 생각하니 이혼 과정에서 줄리아에게 미련 없이 넘겨주었던 보트가 새삼 아쉬웠다. 잭이 직접 그녀의 이름까지 손수 새겨넣은 생일 선물이었기에 그녀가 가져가는 게 당연했다. 결국은 바쁜 일정 탓에 어영부영 보트 구매를 미룬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영양가없는 상념에 씁쓸한 마음을 추스른 그가 다시 젊은 남자로 시선을 돌렸을 때 즈음에 그는 이미 선잠에 빠져든 것 처럼 보였다. 휴식을 취하는 이웃의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망원경을 내리려던 잭의 시선 구석으로 근처의 벽에 기대 세워진 물건이 반사된 햇빛에 순간 번뜩였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집중한 그가 망원경의 배율을 높이자 고배율 스코프가 장착된 사냥용 소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따금 산사자나 곰이 출몰하기도 하는 산속이었기에 그저 손 닿는 가까운 곳에 총을 놓아두었을 뿐 별다른 의도가 없었을 텐데, 그제까지 잭을 내심 안도하게 만들었던 이방인의 존재는 그의 마음에 날 선 불안감을 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오두막은 장애물 하나 없는 호수를 사이에 두고 있었고, 잭의 오두막은 호수를 바라보는 거대한 유리 창문이 나 있었다. 

 

자신이 염탐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타인을 반기지 않는 이웃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 순간 잭의 불안한 시선을 알아차린 듯, 남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재빠른 움직임으로 소총을 잡아 든 그가 테이블을 넘어뜨리자 그 위에 올려져 있던 노트와 보호경이 어디론가 나가떨어졌다. 잠시 테이블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는 익숙한 움직임으로 잭을 향해 소총을 조준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인 잭은 이웃의 시선이 닿지 않을 보트하우스 건물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가빠진 심박만큼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만에 하나 헬기가 총격을 받아 고장이라도 난다면 호숫가를 떠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근처 보안관 사무실이나 국립 공원 관계자에게 도움을 청하려면 오두막에 있는 위성 전화를 써야 할 텐데, 자신이 있는 곳에서 오두막까지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이웃 남자의 사격 실력을 시험하고 싶지 않았으나, 언제까지고 건물 뒤에 숨어 있을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가 호수를 건너 넘어오기라도 한다면…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 제 운을 믿기로 결심한 잭은 호흡을 가다듬고 오두막을 향해 달려갔다. 언제라도 날아들지 모르는 총탄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던 그의 귓가로 무언가 빠르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파고들었다. 

 

반사적으로 근처 가스 그릴을 향해 몸을 날린 잭은 차가운 철제 그릴에 등을 기대 앉아 몸을 숨겼다. 기우이길 바랐건만, 그 남자가 정말로 자신의 방향으로 총격을 가한 게 분명했다.

 

 

위성 전화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호수까지는 차로 족히 서너시간은 걸릴 터였다.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불안한 상상이 잭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터질 듯 뛰는 심박에 가슴을 부여잡고 가쁜 숨을 헐떡이던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뒷마당에 자리잡은 이질적인 존재감을 알아차렸다. 

 

그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부자연스럽게 쓰러져 널브러진 산사자는 족히 잭의 키를 넘어서는 거대한 몸집을 지니고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든 채 금방이라도 잭을 덮칠 듯 날 선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는 맹수의 시선을 마주하던 그는 산사자의 누운 몸 아래 잔디가 새빨갛게 물드는 걸 멍하니 지켜봤다. 잠깐이나마 거칠게 부풀었다 꺼지던 두툼한 흉부는 금세 생기를 잃고 움직임을 멈췄다. 더 이상의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호숫가의 이웃이 아니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산사자의 점심밥이 되었을 터였다.

 

 

여전히 가쁜 호흡을 가다듬은 잭이 조심스럽게 가스 그릴 너머로 고개를 내밀자 호수 반대편에 선 젊은 남자가 손을 흔드는 게 흐릿하게 보였다. 긴장해 마른침을 삼킨 그는 근처에 떨어뜨린 망원경을 집어 들었다.

 

SORRY FOR SCARING YOU
IT WAS RIGHT BEHIND YOU

놀라게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그게 당신 바로 뒤에 있었어요.

 

소총대신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힌 스케치북을 든 젊은 사내는 진심으로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힘 빠진 웃음을 터뜨린 잭은 남자가 고배율 망원경을 들어 올리는 걸 알아차렸다.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서며 망원경에서 얼굴을 뗀 잭은 남자의 방향으로 손을 흔들고 그의 도움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두 손을 모아 보였다. 

 

남자가 자신에게 살의가 없다는 건 확실했으나, 애초에 그가 왜 자신의 방향으로 소총을 조준했는지는 여전히 해명이 되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달라는 시그널로 손가락을 들어 보인 잭은 오두막 안쪽에 위치한 자신의 책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잡한 전자회로와 수식 따위가 적혀있던 화이트보드를 지우고 재빠르게 무언가 적어 내리며 밖으로 돌아온 그는 남자의 방향으로 손을 흔들고 화이트보드를 들어 보였다. 

 

THANK YOU FOR SAVING MY LIFE,
NEIGHBOR!
I’M JACK
WHY DID YOU POINT YOUR
RIFLE OVER HERE?

생명을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이웃님!
내 이름은 잭이에요.
왜 이쪽으로 조준을 하셨나요?

 

잭의 화이트보드를 확인한 남자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며 뜸을 들이던 그는 스케치북 두 장에 걸쳐 대답을 적었다.

 

TRAUMA SHIT
GOT ME OFF GUARD
IM REALLY SORRY
IT WILL NEVER HAPPEN AGAIN

트라우마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LEVI KANE
EX MARINE
SCOUT SNIPER

리바이 케인.
전 해병대
정찰 저격수입니다.

 

잭은 그제야 자신의 망원경에서 반사된 빛이 그의 선잠을 방해했으리라 짐작했다. 스케치북과 망원경으로 제한되는 대화 사이로 자신의 궁금증에서 시작된 이 모든 일을 설명하고 제대로 사과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예상한 것 보다 우호적으로 보이는 이웃을 향한 이런저런 궁금증이 다시 떠올랐다. 조금 더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테이블 위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축축해진 손바닥을 청바지에 비벼 닦은 리바이는 긴장해 마른침을 삼키며 망원경 너머로 무언가 생각하다 글을 적는 잭의 동향을 유심히 관찰했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LEVI.
WOULD YOU LIKE TO TALK?

나라를 위해 희생해주셔서
고마워요, 리바이.
이야기 나눌래요?

 

잭의 얼굴에 피어난 부드러운 미소에 오래 느끼지 못했던 평안함이 리바이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가 원한다면 리바이도 그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무슨 일을 하길래 개인 헬기까지 가졌는지. 언제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왜 이런 먼 곳을 선택해 별장을 지었는지. 

 

그러나 보트의 엔진이 박살 난 리바이가 호수를 건너기 위해서는 직접 노를 젓는 방법밖에 없었다. 굳게 닫힌 잭의 보트하우스는 헬리패드도 겸하고 있으니 멋들어진 보트를 가지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가 여기로 직접 오려는 걸까? 잠시 안정되었던 리바이의 심장이 괜한 기대감에 간질거렸다. 

 

I’D LOVE TO.
ARE YOU COMING OVER?

좋습니다.
이쪽으로 오실 겁니까?

 

리바이의 대답에 활짝 웃는 잭의 얼굴에서는 어쩐지 어린 아이의 순수함이 느껴졌다. 

 

잠시 기다리라며 오두막 안으로 뛰어 들어간 잭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게 활짝 열린 뒷문 파티오 유리문 너머로 보였다. 보트를 타고 오려는 건 아닌가? 리바이는 뒷문 포치 덱에 걸터앉아 인내심 있게 그를 구경했다.

 

 

잠시 후 오두막에서 나온 잭의 손에는 정체를 알기 힘든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들고 있던 물체를 힘차게 하늘로 던진 잭의 행동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선 리바이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호숫가로 다가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가까워지는 소형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드론을 보게 될 줄이야. 마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우를 만나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에 리바이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시끄럽게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리바이의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오던 기계는 호숫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다른 순간 조용해졌다. 무슨 이유인지, 모터가 전부 작동을 멈춘 것 같았다. 그대로 추락한다면 호숫가를 뒤덮은 크고 작은 자갈 위에 처박혀 산산조각이 날게 분명했다. 

 

드론의 예상 추락 경로로 달려간 리바이는 여전히 빠른 속도를 유지한 채 떨어지는 기계 덩어리를 어렵지 않게 받아냈다. 

 

— Nice catch, Levi! 

 

리바이의 가슴팍에 안착한 드론에서 잡음이 뒤섞인 미성의 목소리와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예상했던 것 보다 한참은 가벼운 드론은 깔끔한 하우징도 없이 기본적인 뼈대에 단정하게 정리된 전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드론 아래에는 튼튼해 보이는 무전기가 집 타이에 묶여있었다. 

 

— I honestly didn’t expect you to catch it. Thank you. Over. (직접 받아주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감사해요. 오버.)

“Ex-Marine at your service, sir. Over.” (전 해병대 인사드립니다. 오버.)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며 잭의 방향으로 장난스레 경례를 보낸 리바이는 보트하우스 근처에 놓여있는 주머니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Did you send your drone expecting it would crash? Over.” (부서질 거라 예상하고 드론을 보낸겁니까? 오버.)

— I haven’t flown it that far, so I wasn’t sure if the signal would reach the end of the lake. Over. (그렇게 멀리 날려본 적은 없어서 신호가 호수 반대편까지 닿을지는 확실하지 않았어요. 오버.)

 

무전기를 드론에서 떼어낸 리바이는 오두막 뒷문 근처 나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드론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Did you make this yourself? It seems well built. Over.” (직접 만드신 겁니까? 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오버)

— I’ve had a lot of spare time. So, uh… (시간이 엄청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음…)

 

잭은 머쓱한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 I’m glad you are here, Levi. Thank you again for saving my life. Over.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리바이. 날 구해준 일, 다시 한 번 감사드릴게요. 오버.)

“Don’t mention it. I’m sorry again for pointing a rifle at you earlier. I’ve never had an episode during daytime. I’m not sure why…” (천만에요. 그것보다는 당신한테 총을 겨눠서 미안합니다. 낮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저도 왜 그랬는지…)

 

예상치 못한 트라우마에 휘둘려 손끝 하나라도 잘못 움직였다면 잭을 다치게 했을 거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어둑한 무력감이 리바이의 폐를 짓눌렀다. 답답한 마음에 깊은 한숨을 뱉어낸 리바이는 피로한 눈꺼풀을 주물렀다.

 

— About that, I’d like to apologize to you. It’s been a while since I’ve seen anyone, so I was scoping your cabin when I realized it was occupied. I think it must have bothered you. I’m sorry. Over. (그거 말이죠, 사과 드릴게요. 다른 사람을 본지 너무 오랜만이라, 당신 오두막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었거든요. 그게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미안해요. 오버)

 

전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선잠에 빠져있었으니, 망원경에 반사된 햇빛이라면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터였다.

 

이유라도 알게 되니 새까만 제 머릿속 그림자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불안함이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흘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 올라가 있던 어깨 근육이 풀어졌다.

 

“That’s okay. Thank you for telling me, Jack. Knowing what triggered it helps. I, uh…” (괜찮습니다.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잭. 어떤게 트리거였는지 아는 게 도움이 되거든요. 저는, 어…)

 

재미없는 이야기는 계속하고 싶지 않아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던 리바이의 시선에 새하얀 헬기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걸려들었다. 

 

“Nice helicopter, by the way. Are you a pilot? Over.” (헬기가 멋있네요. 조종사이십니까? 오버.)

— Something like that. I sure can pilot a lot of different things. Over. (비슷해요. 다양한 걸 조종할 수 있죠. 오버.)

 

장난스럽게 웃는 그의 나긋한 목소리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혹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잠깐이나마 망원경 너머로 보았던 잭의 매력적인 미소가 눈앞을 아른거렸다. 숙녀분들 꽤나 울렸겠군. 왠지 열기가 기어오르는 목덜미를 매만진 리바이는 저도 모르게 마른 입술을 축였다. 지금 망원경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That sounds promising. Do you have a matching boat? Over.” (희망적으로 들리는군요. 헬기랑 세트인 보트도 가지고 계십니까? 오버.)

— I don’t, but my, uh… (저한테는 없는데, 그…)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잭이 느릿한 걸음으로 목재 부두를 향해 걷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 My ex-wife does. It’s a long story. No drama, though. It was hers to begin with. How about you? What kind of boat do you have? Over. (이혼한 와이프가 가지고 있어요. 말하자면 길어요. 별다른 드라마는 없지만요. 애초에 그 사람꺼라. 그쪽은요? 무슨 보트를 가지고 있나요? 오버)

 

언제 이혼했어요? 

지금은 만나는 사람 있어요? 

혹시 남자는 관심—

 

잭의 사적인 부분이 드러나자 더 큰 호기심이 재빠르게 리바이의 혓바닥을 기어올랐으나, 아무리 자신에게 호의적인 잭이라고 하더라도 대화를 튼지 채 한시간도 되지 않은 이웃에게 물을만 한 것들은 아니었다. 잭이 울린 게 여자만은 아니겠어. 고개를 저으며 쓸모없는 궁금증을 애써 털어낸 리바이는 보트하우스로 걸음을 옮겼다.

 

“Well, I’ve got a busted Yamaha 4 Stroke under this old tree I’ve been trying to get rid of since this morning. I hope it’s just the housing that’s broken. Over.” (그게, 아침부터 치우고 있던 오래된 나무 아래에 박살난 야마하 4 스트로크 엔진이 있긴 합니다. 하우징만 부서졌길 바라고 있어요. 오버.)

— No way! You’re telling me that there’s no working boat among the only two guys living around here? What a tragedy! (이럴수가! 이 근처에 사는 유일한 두 사람 사이에 제대로 작동하는 보트가 없다는 건가요? 이런 비극이 있다니!)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 잭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무전기 잡음이 뒤섞인 그의 웃음소리에 전염된 리바이도 어느샌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 I guess I should let you get back to work, huh? Thank you for the talk, Levi. I’ll take care of contacting the authorities regarding the mountain lion. Feel free to use the radio whenever you need company. Jack, over and out. (하시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놔드려야 겠군요? 이야기 나눠줘서 고마워요, 리바이. 산사자 관련해서는 제가 관련 부서에 연락할게요. 대화 상대가 필요하면 언제라도도 편하게 라디오 해요. 잭, 오버 앤 아웃.)

“You do the same, Jack. It was nice talking to you. Levi, out.” (그쪽도요, 잭. 이야기 나눠서 즐거웠어요. 리바이, 아웃.)

 

호수 반대편의 잭에게 손을 흔들어주자 화답하듯 팔을 크게 휘적인 그는 이내 오두막 안으로 사라졌다.

 

 

한적한 오후의 햇빛을 반짝이는 호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웠다.

 

 

 

 


 

 

포타에 이미 시작해놓고 못끝낸 시리즈가 여럿 있으나 😅😅😅😅 The Gorge가 개봉한 2월부터 앓던 리바이x잭 크오로 계속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써봤습니다 😍 우선 여기까지 써본 감상으로는 리바이가 시를 못써서 다행이다(...) 

 

대충 생각난 큰 흐름을 따라서 슬로우번(?) 연애를 할 것 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기회가 될때마다 이어볼게요.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기쁩니다 헤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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